에스겔 47:15-20 여호와께서 새롭게 회복시킬 이스라엘의 경계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동쪽과 남쪽 경계를 정해 주시고 서쪽 경계는 지중해로 정해 주셨다.
이전 말씀은 여호와께서 12지파에게 직접 땅을 나누시되 각 지파에게 똑같이 나누신다고 했다. 이제 여호와께서 나누어 주실 땅 전체의 바깥 경계를 북쪽 동쪽 남쪽 서쪽의 순서로 말한다.
15절의 경계선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국경선의 의미가 아니다. Block은 경계선이라는 말이 경계선 안쪽의 영토를 의미한다고 했다(Block, 712). Cooper도 경계선이 민수기 34:3-12절과 비슷하며 북쪽과 동쪽과 남쪽의 경계에 있는 도시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Cooper, 416). 따라서 경계선이란 국경선이 아니라 국경 근처에 있는 주요한 도시들을 연결하는 땅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민수기는 남쪽인 애굽 쪽에서 올라오고 있기에 남쪽부터 말하고 있지만 에스겔 당시 돌아올 사람들은 북쪽으로부터 올 것이기에 북쪽 경계선부터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15-16절에 나오는 북쪽 경계 중에서 민수기 34:7-9절과 겹치는 곳은 지중해와 하맛이다. 나머지 지명들은 그 사이에 있는 도시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쪽 경계는 모세를 통해 알려주신 경계와 같은 것이다. 15절은 지중해에서 출발하여 헤들론 길을 거쳐 스닷(Zedad) 어귀까지 라고 했다. Block과 Dyer는 헤들론이 오늘날 레바논의 트리폴리 북동쪽의 Heitela일 것이라고 말한다(Block, 713; Dyer, 1314-15).
개역개정에서는 헤들론 길 다음에 스닷 어귀가 나오지만 새번역과 영어의 ESV, NIV, NLT, RSV는 Lebo-Hamath이라는 다른 도시의 이름이 하나 더 나온다. 이는 개역개정과 영어의 NASB는 Lebo라는 단어를 입구라는 뜻으로 해석했지만 새번역과 다른 영어 번역들은 이 단어를 도시 이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Allen은 Lebo라는 말이 북쪽 하맛으로 인도하는 접근도로로 해석했다(Allen, 514). 그러나 Block과 Dyer는 Lebo라는 말이 "입구" 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도시 이름이기에 Lebo-Hamath을 가리킬 것이라고 보았다(Block, 713; 1314-15).
스닷은 오늘날 Sadad로 그 이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Block, 713).
지중해에서 스닷까지 연결해 본다면 르보는 지명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16절의 브로다는 다마스커스 북동쪽 30마일 지점이고 시브라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마스커스 경계와 하맛 경계 사이에 있다고 16절에 설명이 되어 있다. 하셋핫다곤 역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브라임과 하우란 경계에 있다고 했다. 17절은 이렇게 설명한 지명들을 근거로 북쪽 경계선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18절은 동쪽 경계이다. 동쪽은 16절에서 말한 하우란과 다메섹에서 요단강을 거쳐 동쪽 바다까지 측량하라고 했다. 동쪽 바다는 사해를 가리킨다. 동쪽 경계에서 주목할 것은 민수기 34:10-12절과 같이 요단강 동편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한 땅은 이스라엘 땅에서 제외되었다.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가 거기서 살겠다고 요청한 것을 여호와께서 인정은 하셨지만 그곳은 약속의 땅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Block은 모세나 에스겔에게는 약속의 땅의 동쪽 경계는 요단강에서 끝나고 그 너머의 땅은 부정한 땅이었다고 했다(Block, 716). 그렇다면 두 지파 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보다는 그 땅이 좋아 보였기에 거기에 살겠다고 주장한 것이 된다.
19절은 남쪽 경계이다. 다말은 사해 남동쪽의 도시이고 동쪽 경계의 끝부분이 된다. 거기서부터 계곡을 따라 므리봇 가데스 물로 이어진다. 이곳은 신 광야에서 가장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다. 므리봇 가데스는 가데스 바네아의 다른 이름이다. 거기에서 애굽 시내를 따라 지중해에 이른다고 했다. 애굽 시내는 나일강이 아니라 이집트와 가나안 땅의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던 이집트의 건천(the Wadi of Egypt)이다. 20절에 나오는 서쪽 경계는 지중해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한 번도 지중해가 있는 서쪽경계까지 차지한 적이 없었다.
고대의 땅의 경계는 대부분 산과 강과 바다 등 지형에 따라 결정되었다. 오늘 말씀에 나온 경계들도 간단히 말하면 북쪽은 주로 산지이기에 산맥을 따라 나뉘었을 것이다. 북쪽 경계는 가나안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가나안 땅과 가나안 땅이 아닌 곳으로 자연적으로 나뉘었던 경계였다. 동쪽의 주된 경계는 요단강이고 남쪽은 오아시스와 건천이 그 주된 경계이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경계는 민수기 34:1-12절과 비슷하다. 그런데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지 않은 요단강 동편을 차지하기도 했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지중해변의 블레셋 사람들의 땅은 차지하지 못했다. 갈릴리의 북쪽에 있는 오늘날 레바논에 해당하는 지역도 다윗시대를 제외하고는 차지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한 땅은 하나님 뜻과 상관없이 차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도 강한 대적을을 보고 두려워하여 담대히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따라 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이 잘 풀리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고는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이 있어 안될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하기 쉽다.
내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과 내 생각이 일치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내가 원하는 길과 중간에서 갈라질 때가 훨씬 많다. 그 때에 죽기보다 가기 싫은 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순종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기 위한 몸부림이셨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가서 내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해야 한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약속을 믿고 나가야 한다.
사진출처: https://www.thetorah.com/article/defining-the-land-of-canaan-in-numbers-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