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4:9-16 백성들로 하여금 그릇 행하여 우상을 섬기게 한 레위사람들은 성전을 지키는 일과 제물을 잡는 일을 하게 하고 그들보다 신실하게 섬긴 사독의 자손들은 성소에서 하나님 가까이에서 섬기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성전에 임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관한 모든 규례와 율례를 기억해 두고 다시는 과거에 저지른 악을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과거 레위인들의 죄악으로 인해 제사장 직분을 금하고 사독의 자손들에게만 제사장의 직분을 허용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역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9절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라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들 중에는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이란 일시적인 방문객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터잡고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주로 과거 전쟁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레위인들 대신 성전에서 레위인들이 하던 허드렛 일을 했었다. Allen도 Talyor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방인들을 열왕기하 11:6-7절에 나오는 남서쪽 소아시아 출신 가리 사람들로 본다. 이들은 왕궁을 지키던 자들인데 그들의 직무 수행 영역은 성전까지 포함했다(Allen, 481; Tayler, 263). 이방인들은 몸에도 할례를 받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까지도 할례를 받고 거룩하게 되지 않으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10절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떠날 때 레위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멀리 떠났다고 했다.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구약에 계속 나오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긴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레위인들이 그릇 행한 것은 무엇일까? Cooper는 요시아 왕이 산당들을 철폐하기 전까지 레위인들이 산당들의 제사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Cooper, 392). Eichrodt도 역시 성전을 지키고 희생제물을 잡는 일을 하던 레위인들이 시골의 산당들에서 제사장을 했다고 했다(Eichrodt, 564-65). 레위인들은 시골의 산당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면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과 우상숭배를 섞어 놓았던 것이다. 이들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11절을 보면 이제 새로운 성전에서는 이러한 레위인들의 역할을 성전 문을 지키고 희생제물을 잡음으로 백성들에 대해 사역하게 한다는 것이다. 12절은 그 이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과거에 우상들 앞에서 백성들에 대해 사역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쳐서 벌하셨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다시는 새로운 성전에서 백성들을 넘어지게 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13절은 레위인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물건들 곧 가장 거룩한 것들에는 접근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는 과거 자신들이 행한 부끄러운 일과 과거 자신들이 행했던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Block은 이러한 말씀이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레위인들이 낮은 신분으로 강등되는 벌을 받은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Block, 631). 이러한 말씀의 초점은 새로운 성전의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4절에서 그들에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서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맡기신다고 하신 것이다. 새로운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바깥쪽에서 지키고 섬기는 일을 맡게 하신 것이다.
15절에 나오는 레위사람 제사장들 중에서 사독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지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하나님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이다. 레위사람 제사장들 중에 사독의 자손들은 완전히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나머지 레위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 지켰다는 뜻이다. Block도 사독 자손들의 신실함은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Block, 636).
16절은 사독의 자손들이 나머지 레위자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신실함을 지켰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상에 가까이 오고 하나님께 수종을 들어 하나님께서 맡긴 직분을 간직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모두 멸하지 않으시고 나머지 레위자손들에게는 성소 밖에서 섬기게 하시고 그 중 사독 자손들만 성소 안에서 섬기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사독 자손들도 자신들만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죄인들 중에서 그래도 조금 더 신실했던 사독의 자손들에게 특권을 맡겨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 문제는 사람들의 교만함에서 생긴 것이다. 레위자손들은 자신들이 맡은 일을 하찮게 여기고 지방의 산당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고는 이방사람 노예들에게 자신들이 맡았던 일을 맡긴 것이다. 사독의 자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독의 자손들은 나머지 레위자손들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에 나머지 레위 자손들도 그렇게 행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들은 스스로 다른 성도들보다 자신을 높게 여기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자손들이나 레위자손들 중 사독의 자손과도 같다. 성도들도 교회에서 사람들 보기에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높게 여기고 주방 일이나 기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낮게 여기면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과도 같다. 교회는 세상 질서와는 달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0:25-27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질서와는 달리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다. 세상 질서가 교회를 다스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신 것처럼 그런 교회를 떠나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