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3:1-11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보여주시며 과거의 더러운 우상들과 더러운 습관들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인 42:15-20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을 구별하는 담은 각각 오백 큐 빗으로 속된 세상과 완전히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며 성전 측량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에스겔의 환상의 끝은 아니다. 이제 그렇게 새롭게 만든 성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장면이 이어진다.
1-2절과 4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동쪽 문으로 들어와 성전 안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이다. 북쪽 문도 있고 남쪽 문도 있는데 어째서 하필이면 동쪽 문일까? 이는 10-11장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 문에 머물다가 떠나셨기 때문이다. 떠나신 그 곳으로 그대로 다시 돌아오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떠나가셨는데 그 떠나신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것이다. 동쪽은 또한 바벨론이 있는 쪽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신실한 남은 자들과 함께 하셨다가 그들과 함께 돌아오시는 것이다. 이는 또한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사도행전 1:11절에서도 두 사람의 천사가 말하길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라고 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임재의 상징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이다.
2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는데 이는 1:24절에서도 나온 모습이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모습을 들은 것과 본 것으로 나누어 묘사한 것이다. 새번역이나 개역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번역했다. 원문은 음성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단순히 소리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음성과 물소리는 같은 단어이기에 하나님의 소리와 많은 물소리로 번역해야 한다고 본다. ESV는 그렇기 때문에 “the sound of his coming was like the sound of many waters” 라고 번역했다.
문맥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으로부터 오는데 그 소리는 많은 물소리 같고 모양은 빛나는 영광이라는 것이다. 많은 물소리는 우기가 되어 Wadi에 많은 물들이 쏟아지는 소리이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연에서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 중에 가장 큰 소리일 것이다. 온 땅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큰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한 것이고 그 영광의 빛으로 인해 그 온 땅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3절은 에스겔이 본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본 환상과도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을 멸하시고 그 성전을 떠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포로들 중 남은 자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그발 강 가에 계셨던 것이다. 그 영광을 보고 에스겔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것이다. 4절은 그렇게 에스겔이 엎드린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동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5절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안 뜰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본 것이다. 6절은 여호와의 영광을 본 뒤 그 음성을 듣는 장면이다. 에스겔에게 하는 말이 성전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때 한 사람이 에스겔의 곁에 서 있었다고 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Cooke는 의심할 여지없이 여호와라고 말한다(Cooke, 463). 그러나 Block은 이 사람이 성전을 측량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Block, 580). Jamison과 Fausset도 역시40:3절에서 성전을 측량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Jamison & Fausset, 616). 이해하기 어려울 때 때는 문맥을 봐야 한다. 7-11절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의 곁에 선 사람은 하나님이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 것이다.
7-9절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설명하시는 내용이다. 앞 뒤에서 감싸고 있는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신다는 내용이다. 성전은 바로 여호와의 보좌를 두고 발을 두는 처소라고 하셨다. Block은 보좌와 발을 둔다는 말은 성전이 여호와의 왕궁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왕권을 주장하시는 것이라 했다(Block, 580).
이 성전은 네 가지로 더럽히지 않게 하신다고 했다. 첫째는 7절에 나오는 음행이다. 왕들의 음행이란 왕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을 말한다. 둘째 왕들의 시체는 왕들의 시체를 신격화하는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죽은 왕들을 신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셋째는 8절에 나오는 왕궁과 성전을 문지방 하나 사이로 가까이 둔 것이다. 넷째는 8절 뒷부분에 나오는 가증한 일이다. 가증한 일이란 토할 것 같이 더러운 이방인들의 풍습들이다. 지도자들이 우상을 섬기고 또 자신들을 신격화하여 왕궁과 하나님의 성전을 함께 놓으며 이방의 풍속을 따른 것으로 성전을 더럽힌 것이다. 9절은 이 네가지 중 대표인 음란함과 왕들의 시체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사신다는 것이다.
10-11절은 이제 에스겔과 함께하는 남은 자들에 대한 권고이다. 10절은 에스겔에게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말로 설명하여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들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그 다음에 그들이 그 성전 모양을 측량하게 하라는 것이다. 11절은 조건문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이 이미 저지른 죄를 부끄러워하거든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라는 것이다. 죄를 부끄러워하고 회개한 자들이 성전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지키도록 주신 모든 말씀들을 알게 하라는 뜻이다. 그들의 목전에서 글로 써서 그 모든 법도와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것을 날마다 지켜 행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먼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따르던 세상 것들을 다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높이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지 않으면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러한 속된 것과 함께 섞어 놓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으니 이제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거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