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9:25-29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그 땅에 안전하게 거하게 하셔서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과 하나님을 대적했던 일들을 완전히 잊게 하시고 성령을 쏟아 부어 보호막을 입혀 주셔서 완벽하게 보호해 주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 앞에 나타내며 이스라엘 족속을 심판하신 이유도 알게 하셔서 영광의 하나님만 경배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그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거룩함을 나타내신다고 하신다.
2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 부분과 연결된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나타내시고 이스라엘 족속들에게는 심판하시고 얼굴을 가리신 이유를 알게 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언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언약을 깼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시키고 버렸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포로로 잡혀간 야곱의 자손들을 돌아오게 한다고 했다. 이는 전에 모든 것을 파괴하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과 완전히 반대로 행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족속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했다. 개역과 새번역은 긍휼이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은 왜 이를 사랑으로 바꾸어 번역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는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어원은 자궁이라는 뜻이다. 어미가 새끼를 자궁에 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품고 보호하시며 자궁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 그렇게 열심을 내셔서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회복시키시는 모습을 보고 온 세상이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26절은 그렇게 돌아오게 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품어 주신 뒤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먼저 그들이 그들의 수치와 여호와를 배반했던 모든 행위들을 뉘우친다고 했다. 뉘우친다는 말은 본래 들어 올린다는 말이고 이 부분에서는 잊는다는 뜻으로 쓰셨다. 과거에 행했던 모든 부끄러운 일들과 하나님을 대적했던 모든 행위들을 다 잊고 이제는 더 이상 행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들이 그 땅에서 안전하게 거하고 아무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27절은 26절에 계속 이어지는 그 때이다. 언제 그렇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들의 땅에서 모아서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이 보는 가운데 그들을 거룩하게 하실 때 과거의 모든 것들을 다 잊고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일들과 하나님을 대적한 일들은 그들이 회개를 해서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시고 어미의 자궁 안에 거하는 것처럼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이 보는 가운데서 돌아오게 하시고 모든 만민들 앞에서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과거의 잘못을 완전히 잊고 다시는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 때문에 과거의 부끄러움과 하나님을 대적했던 일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더 이상 안 하게 되는 것이다.
28절은 그렇게 되면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를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바로 여호와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러 나라들에게 사로잡혀가게 하셨고 이제 다시 모아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땅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다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29절은 여호와께서 다시는 그 얼굴을 가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 백성들이 여호와를 부르면 응답하시고 즉시 돌아보신다는 뜻이다.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이스라엘의 집들에게 완전히 다 쏟아 부으셨을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전에는 진노를 쏟아 부으셨는데 이번에는 하나님 자신의 영을 그들에게 넘치도록 쏟아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쏟아 부은 영은 여호와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Block은 말했다(Block, 488).
쏟아 부었다는 말은 액체를 쏟아 붓는 그림이기에 액체가 어떤 물체를 완전히 뒤덮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렇게 뒤덮이게 하는 것은 스테이크에 소스를 붓는 것처럼 보기 좋게 하거나 맛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녹을 완전히 벗긴 칼이나 도끼에 기름을 쏟아 부어 완전히 뒤덮이게 하는 것과도 같다. 더 이상 녹이 슬지 않도록 보호하시려는 보호막을 입히시는 것이다. 필자가 녹슨 자전거 부품들을 분해해서 녹을 완전히 벗긴 뒤에 기름을 부어 완전히 뒤덮이게 한 적이 있다. 성령을 쏟아 붓는다는 말은 이처럼 그 백성들이 다시는 녹이 슬고 못쓰게 되지 않도록 보호막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도 우리가 무엇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 품에 품어 주시며 다시는 상하지 않도록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셔서 보호막을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과거에 음란하게 세상 탐욕과 합하여 살았던 부끄러운 일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던 일들을 다 잊게 된 것이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돌아오게 하시고 그 품에 품어 주시고 성령을 부어 보호해 주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 온 세계 만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