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8:10-13 곡은 이스라엘 산들에 평안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탈하려 하고 온 세상의 상인들도 그 중간에서 이득을 보려고 노리고 있다.
이전 말씀은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공동체를 향해 구름 떼처럼 폭풍처럼 공격해 올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곡이 악한 꾀를 내어 평안한 백성을 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려는 계획이 이어진다.
10절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말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날이란 9절에서 광풍같이 구름 떼같이 공격해 올 그 날이다.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나고 악한 꾀를 낸다는 것이다. 악한 꾀란 평안히 거주하는 땅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평안히 사는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백성들을 곡이 공격할 악한 꾀를 내었다는 것이 10절의 강조점이다.
11절은 곡이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평원의 고을들이란 성벽이 없이 열려있는 넓은 들판의 땅이다. 곡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의 백성들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도 없다.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째서 이스라엘의 산들은 성벽도 쌓지 않고 문이나 빗장도 만들지 않았을까? 그들은 37:24-28에서 여호와와 맺은 화평의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고 번성하게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적이 쳐들어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벽도 문도 빗장도 없이 사는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12절은 곡이 이스라엘의 산들을 침공하려는 이유를 밝히는 내용이다. 곡은 물건을 약탈하고 노략하려는 것이다. 곡은 이스라엘의 산들의 고요함이 어떤 것인지 네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는 전에는 황폐하였다가 지금은 다시 사람이 산다는 것이다. 둘째는 여러 나라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모여든 사람들은 많은 가축들과 재물들로 부유하게 산다는 것이다. 넷째는 그들은 세상의 중심에 산다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땅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든지 가장 높은 곳을 중심으로 삼고 그곳에 성벽을 쌓고 요새를 만들었던 것이기에 가장 높은 곳이 중심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칠십인역 구약성서는 땅의 배꼽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땅의 배꼽이란 누워있는 아기의 배와 배꼽을 연상할 수 있다. 배에 지방이 많아져서 배꼽이 오히려 배보다 더 들어간 사람이 많지만 아기 때는 본래 배꼽은 배보다 약간 솟아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이 그려주는 그림은 평지 가운데 높이 솟은 부분을 그리게 한다.
땅의 배꼽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Dyer는 새롭게 회복될 이스라엘의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발견될 것이라고 해석했다(Dyer, 1301). Dyer는 새로운 이스라엘 산들이 혈통적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으로 본 것이다. Allen은 땅의 배꼽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그들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했다(Allen, 385). Fausset은 그들의 도덕적 탁월성이 아닌 세상의 도덕적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Fausset, 350).
Allen이나 Fausset 모두 배꼽이라는 말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로 온 세상의 중심이 된다고 본 것이다. Cooper는 히브리어로 배꼽이라는 말이 다볼산(Mount Tabor)과 비슷하다며 이스르엘 골짜기(the valley of Jezreel)의 북쪽에 있는 지역일 것이라고 하며 계시록 16:16절의 아마겟돈 전쟁과 연관성을 제시하기도 한다(Cooper, 338). Cooper의 해석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해석할 때는 먼저 전 후 문맥과 병행되는 단어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중심으로 먼저 해석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함께 사용된 단어들이 그리는 그림들이 말하는 상징이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Block은 에스겔 5:5절에서 "예루살렘을 여러 이방 나라들 가운데 두었다는 말을 근거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해석을 거부한다(Block, 448). 에스겔 당시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여러 이방나라들이 주변에 둘러있고 그 중에 높이 솟은 산지에 예루살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사기 9:37절에서도 역시 "땅의 중심" 이라는 말이 나온다. NASB는 이 말을 "the highest part of the land" 라고 번역했다. 개역은 "밭 가운데" 라고 번역했는데 분명히 잘못 번역한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온다는 말은 분명히 평평한 곳에 높이 솟아 있는 산에서 내려온다는 뜻이다. Block은 11절의 성벽도 없다는 말과 땅의 높은 곳이라는 말이 나란히 놓인 것으로 보고 이는 안전하고 확실한 장소를 가리킨다고 했다(Ibid., 448).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탈굼도 이 말을 요새(תֻקפָא : stronghold)라고 번역한 것을 볼 때도 높은 곳에 있는 안전한 장소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따른 해석이다.
13절은 곡이 하려는 일에 대해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들이 증인으로 등장한다. 스바와 드단은 아라비아 사막을 건너서 이스라엘 동쪽으로 가서 장사하는 상인들이다. 다시스는 지중해 해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다. Block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나왔기에 당시 국제무역을 하던 모든 세상 나라들의 상인들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했다(Ibid., 448). Allen은 스바와 드단은 육지에서, 다시스는 바다에서 무역을 하는 자들이라고 해석했다(Allen, 385). 이스라엘의 동쪽 끝은 사막이고 서쪽 끝은 지중해이기에 이 둘의 해석은 결국 당시 모든 세상 나라들의 상인들인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상인들과 부자들이라는 말로 특징지어진다. 부자들이란 NASB와 NIV는 "villages"
라고 번역했고 ESV는 "leaders"
라고 번역했다.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사자들" 이다. 사자는 지배층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기에 새번역은 "젊은 용사들" 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문맥으로 본다면 일반 상인들과 상류층 상인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이 곡에게 이렇게 묻는 것은 곡이 그 땅을 탈취하면 옆에서 그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시체를 노리는 까마귀 떼들 과도 같다. 곡이 이스라엘 산들을 약탈하면 옆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아무런 방어벽도 없어 쉽게 약탈할 수 있는 대상처럼 보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쉽게 삼킬 수 있는 먹잇감으로 보이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기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악한 세력이 이득을 보려고 노리고 있지만 모두가 다 헛수고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깨닫고 악한 대적들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견디기 힘든 고난들이 우리를 덮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