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7:15-20 하나님께서는 두 나무에 유다와 그 따르는 자손들과 요셉과 그 따르는 지파들을 쓰고 하나가 되게 하여 사람들 보는 앞에서 손에 잡으라고 하셨다.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 손에 잡혀 하나가 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와 같이 아무런 소망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그 영을 그 가운데 두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유다와 에브라임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하나가 되게 보여주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15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셨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16절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는 말로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받은 말씀은 한 나무를 가져다가 유다와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라 쓰고 다른 막대기를 가져다가 요셉, 곧 에브라임과 그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족속들이라고 쓰라는 것이다. 유다는 유다지파가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따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덧붙였고 에브라임은 10지파가 따르고 있었기에 모든 이스라엘 족속들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17절은 그렇게 기록한 두 막대기를 하나가 되게하라는 것이다. 에스겔의 손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18절은 이러한 에스겔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무슨 뜻인지 묻는 내용이다. 16절에서 막대기라는 말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대다수는 오늘 본문의 나무라는 말을 통치자의 홀이라고 본다. Block 은 그 경우 그 의미가 너무나 명백하기에 질문거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18절에서 사람들이 에스겔이 보여준 행동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통치자의 지팡이를 뜻하는 말은 따로 있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나무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Block, 398-99).
그러나 Allen은 Block과는 달리 단순히 두개의 막대기를 연결하고 그 연결 부분을 한 손으로 잡아서 두 막대기가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Allen, 362).
그러나 만약 두 막대기에 남왕국 유다를 가리키는 말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을 쓰고 연결하여 쥐고 하나처럼 보이게 했다면 Block이 말한 것처럼 역시 너무나 명백한 의미를 전달하기에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Block은 에스겔이 둘을 하나로 합한 나무가 당시 사람들이 기록할 때 쓰던 왁스를 입힌 나무 판일 것이라고 말한다(399-400).
아람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인 탈굼은 그것에 기록한 글을 고려하여 나무로 된 서판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기록하라고 한 글은 막대기에 쓰기에는 너무 길다. 영어의 New English Bible도 탈굼을 따라 wooden tablet로 번역했다. 이사야 8:1절과 30:8절에서도 이러한 서판에 기록하라는 말이 나온다. 작은 나무판에 왁스를 입히고 글씨를 썼다가 다시 문질러 지우고 또 쓰곤 했던 것이다. Block은 두 나무판을 가죽 끈으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Block, 405). 두 나무판에 남왕국과 북왕국을 상징하는 말을 쓰고 가죽 끈으로 묶고 있다면 두 왕의 홀을 하나로 합쳐 잡는 것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한쪽 판에 유다라고 쓰는 것은 유다 지파가 남왕국 다윗 왕가의 지배적인 지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왕국을 요셉이라고 쓰는 것은 드문 일이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아버지인데 작은 아들 에브라임이 북왕국의 지배적인 지파이기에 요셉이라 쓰고 에브라임의 막대기로 쓴 것이다. 두 지파의 이름만 쓴 것이 아니다. 유다는 그 따르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라고 덧붙이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의 집들이라고 덧붙였다. 북왕국은 여러 지파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왕가의 연합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나무에 기록된 것은 전체 이스라엘 지파들의 호적등본인 셈이다. 남왕국과 북왕국의 호적등본을 하나로 묶는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에스겔이 보여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답한 것이 19절이다. 19절은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라는 말로 에스겔이 보여준 동작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설명한다. 16-17절의 말을 다시 반복해서 말하는데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요셉과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먼저 나온 것이다. 게다가 유다는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말도 없다. 유다 지파는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북왕국을 완전 무시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도 역시 남왕국 유다의 상류층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그러한 유다 지파들의 교만을 완전히 꺾어 놓으신 것이다.
이제 북왕국 남왕국은 따로 없다. 두 막대기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20절에서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 앞에서 손에 잡으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 손에 붙잡혀 하나가 된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막대기에 글씨를 썼다면 사람들이 글씨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알아 볼만큼 크게 쓰려면 나무가 굵어져야 하고 에스겔이 하나가 되도록 잡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나무판으로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두 나무판을 가죽 끈으로 묶고 각각의 나무판에 큰 글씨로 쓴 것을 에스겔은 손으로 잡고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도 수많은 교단들로 갈라져 있다. 특별히 성도 숫자가 많은 교단들은 서로 자신들이 장자 교단이라고 말하며 자신들만 특별하다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 없다.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시당하던 요셉과 그 따르는 지파들을 앞세우고 스스로 높다 하던 유다는 따르는 사람도 없이 홀로 두어 하나로 잡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하나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 앞에 가면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나 성결교나 순복음이 따로 없다. 모두가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주도권을 잡고 앞에 서서 스스로 높이는 지도자들은 뒤로 보내시고 아무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지도자들은 앞에 두실 것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만 높일 수 없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