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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36:16-21

Dawn Word

에스겔 36:16-21

닿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능력을 소유한 이스라엘 사람들

2020. 2. 20.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36장 강해 설교

에스겔 36:16-21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리 중인 여인처럼 닿는 것은 다 부정하게 하기에 이방 나라들로 쫓아 버렸는데도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까지 부정하게 하였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적은 수의 남은 자들을 그 땅에 돌아오게 하셔서 수가 많아지고 결실을 맺게 하셔서 그 땅에 가득 차게 하시고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16-32절은 생리혈처럼 더러운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저들의 거룩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16-21절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이다.

16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공식으로 말하고 17절은 "사람의 아들아!" 라는 공식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다음에 누구에게 전하라는 내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Block은 이 부분이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앞에 두고 하시는 독백이며 에스겔이 하나님과 친밀한 친구라고 말한다(Block, 344).

하나님께서는 친한 친구인 에스겔 앞에서 이스라엘 때문에 속상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어지는 17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땅에 있을 때 그들이 그 땅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한글 번역들에는 행위로 더럽혔다고 되어 있지만 원어는 길과 행위이다. 발로 걸어가는 길이고 행위란 손으로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그 길을 벗어나 걸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손으로 행해야 하는데 악하고 음란한 일들을 행한 것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행위가 마차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 같다고 한 것이다.

Dyer는 생리중인 여인의 비유는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하고 만지는 대로 부정하게 하는 것을 그린 것이라 했다(Dyer, 1297).

레위기 15:19-23을 보면 그 초점은 생리혈 자체가 아니다. 생리 중에 있는 여인이 만지는 자마다 부정하게 되고 누워있던 자리도 부정하게 되고 그 여인이 누웠던 침상을 만지거나 앉아있던 자리나 그 위에 있는 물건을 만진 자도 다 부정하다는 것이다. 이 부정함은 위생적인 개념이 아니다. 누구든지 닿기만 해도 예배 드리는 자리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부정함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길과 행위로 그 땅을 더럽힌 것이 생리중인 여인과도 같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지거나 닿는 모든 땅들이 다 더러워지게 했다는 뜻이다. 마치 만지기만 하면 다 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의 손과도 같은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것이다. 그들이 발로 걷는 길과 손으로 행하는 행위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땅을 발로 닿거나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모두 다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레위기의 제의적 부정의 개념은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얼마나 더럽혔는지를 그린 것이지 여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17절의 생리하는 여인의 그림이 18절에서도 이어진다. 피를 쏟고 우상들로 더럽힌 그 땅을 하나님께서는 분노를 쏟으신다는 것이다. 피를 쏟는다는 말은 살인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앞에서 생리혈을 쏟는 여인의 모습과 연결한 것이다. 그 땅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피와 우상숭배로 더럽힌 땅을 정결하게 하는 방법은 불로 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피를 쏟고 우상숭배로 더럽힌 그 땅 위에 분노의 불길을 쏟으신 것이다. 땅은 분노의 불길로 태워버렸지만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생리중인 여인처럼 닿기만 해도 그 땅을 더럽히기에 19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각국으로 계속해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게 된 것이다.

20절은 그런데 그렇게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더럽히고 있었다. 이번에 더럽히는 것은 그들이 거하는 이방인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방인의 땅들은 본래 더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리 중인 여인과도 같이 손에 닿는 것은 다 더럽히고 있었기에 쫓아내 버렸는데 이번에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기에 그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방 나라에 가서도 계속 더럽히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더럽힌 것이다.

21절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면 안된다며 더러운 것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자신들이 들어간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계속해서 더럽히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더럽히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더럽혀지지 못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 그 백성을 회복시키신다는 내용은 다음에 이어진다.

오늘 말씀을 관통하는 한 장의 그림은 생리중인 여인이다. 생리혈이 더럽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여인과 접촉하기만 해도 예배하는 자리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그런 능력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세상과 짝하여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생리 중인 여인이다. 이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세상 쾌락과 탐욕을 전염시킨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세상 쾌락과 탐욕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다.

만약 오늘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면 생리중인 여인의 비유를 쓰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세상과 짝하여 살며 세상 탐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과도 같다. 그런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전염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부정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며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함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퍼뜨려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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