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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33:23-29

Dawn Word

에스겔 33:23-29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 에스겔 47장

2020. 2. 7.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33장 강해 설교

에스겔 33:23-29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에 남은 불쌍한 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완전히 멸하시겠다고 했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 그대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멸망한 유다 땅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그 땅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3절은 새로운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이 예언도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다 사람들에게 준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초점은 24절에 나오는 것처럼 황폐한 땅에 거주하는 자들에 있다. 황폐한 자들이란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겨진 가난한 하층민들이다. 느부갓네살의 부하 장군이었던 느부사라단은 그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남겨두어 그 땅을 경작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들은 사실 그 땅의 주인들이 아니다. 그 땅의 주인들은 대부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이들이 주인 없는 땅을 경작하면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었는데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는데 우리가 더 많은 즉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소유로 준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한 것도 그 약속의 성취라는 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신 적이 없다. 아브라함 때에 그 땅은 대부분 힛타이트 사람들의 소유였다. 창세기 17:8절에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하신 것은 그냥 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지키면 앞으로 주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17:9절에서 아브라함도 언약을 지켜야 하고 그 자손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다. 17:10절에서 할례는 바로 그 언약의 표시이다. 할례는 짐승을 쪼개 놓는 것과 같은 것이고 생각나게 하는 기억장치이다. 사람을 반으로 자르지 않고 포피만 잘라서 언약을 기억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인도해 내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에 망하게 하시고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이들은 아브라함은 겨우 한 사람이었는데도 이 땅을 차지했다고 잘못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근거해서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을 뿐이다. 그 땅은 오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후손들이 차지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완전히 무시하고 단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조상 아브라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혼자였다고? 절대 아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그 땅에 들어갈 때는 가족 중에 남자는 혼자였을 것이다. 조카 롯도 함께 갔지만 그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혼자였다. 그러나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할 때는 수많은 나라의 왕들과 맞서 싸워서 조카를 구해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이지만 아브라함은 분명히 그 지역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혼자서 살 때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따르지 않으면 그 땅의 소유권은 절대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25절은 유다에 남아있던 가난한 하층민들이 어째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에스겔이 예루살렘으로 날아가서 전하라는 뜻이 아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와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그 땅의 소유자들이다. 왕족과 귀족들과 대제사장 가족들이고 모두 그 땅의 지배자들이었다. 이들은 그 땅이 실제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황폐한 땅에 거하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반대가 되는 본보기로 제시된 것이다. 약속의 땅은 이러한 족장들처럼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흠이 없이 살아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반대로 행했다는 것이다. 고기를 피 째 먹는 것은 이방인들의 풍습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모든 제물은 피를 쏟은 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그 후에 그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우상숭배의 장소에 가서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뜻이다. 우상에게 눈을 든다는 말은 우상에게 경배한다는 뜻이다. 또 피를 흘린다는 말은 무죄한 자들을 죽인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우상의 신전에 가서 고기를 먹다가 그 다음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마지막에는 죄 없는 자들을 죽이기까지 그 죄가 점점 커져만 가는 모습이다. 그렇게 언약을 어겼기에 절대로 그 땅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26절은 칼을 믿는다고 했는데 이는 칼 위에 서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 대신 칼을 의지하며 칼로 사람들을 죽이며 두려움을 줘서 다스렸다는 것이다. 가증한 일을 행했다는 말은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이다. 이웃의 아내를 더럽혔다는 말은 이웃의 아내와 간음을 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향해 죽을 죄를 범하고 이웃을 향해서도 죽을 죄를 범했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그 땅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절대로 안된다는 뜻이다. 유다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들과는 반대되는 본보기로 들은 것 뿐이고 사실은 바벨론에 잡혀와 있는 지도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27절은 또 다시 그들에게 말하라고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시며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약을 깨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범죄한 사람들은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쓰러지게 하시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먹히게 하시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들은 전염병에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모두 다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8절은 그 땅이 황무지와 공포가 되게 하신다고 했다. 개역개정이 공포라고 번역한 말은 쓰레기라는 뜻이기에 새번역처럼 폐허라고 번역해야 옳다고 본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 건물들은 있는데 다 파괴되어 폐허로 남아있는 것이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폐허를 보면 공포심도 들겠지만 원어의 그림은 농경지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 되게 하고 아름다운 성읍은 완전히 폐허 쓰레기 더미가 되게 하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능의 교만이란 말은 새번역은 "거만하던 권세" 라고 번역했다. 이는 자신들의 권세를 자랑하던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산들도 황폐하여 아무도 지나갈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산에 맹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29절은 그러면 그들은 나를 여호와 인줄 안다는 것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증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그 땅을 황무지와 폐허로 만드실 때이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해서 그 땅을 다시 재건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이처럼 완전히 파괴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에 잡혀와 있던 자들이 돌아가서 재건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고 자기들의 힘을 의지해서 자기들 방식으로 재건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에 완전히 다 망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신들 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신들 만이 진짜 구원받은 존재들이라고 떠드는 자들도 이러한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교훈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떠드는 자들이나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사는 자들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완전히 다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겨진 사람들은 가난한 하층민들이고 불쌍한 자들이다. 느부갓네살이 그 땅을 경작하고 관리하도록 노예처럼 남겨둔 사람들이다. 폐허 더미 속에서 겨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Block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시지 않으신다고 했다. 상속권을 주장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것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Block, 263).

어떤 이들은 부와 권세와 명예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적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은 하나님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며 그렇게 이분법적 계층구조로 나누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해석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두 다 하나님의 적이다. 욥도 하나님의 적이고 아리마대 요셉도 하나님의 적이다.

하나님은 부유한 자라고 적으로 삼고 가난한 자라고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만 섬기는 자들을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척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속이는 자들은 오늘 말씀을 다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불쌍한 자들을 완전히 멸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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