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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33:17-20

Dawn Word

에스겔 33:17-20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 에스겔 47장

2020. 2. 5.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33장 강해 설교

에스겔 33:17-20 네 백성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공정함의 방식은 회개하고 돌아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시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의인이라도 하나님을 등지고 불의한 일을 행하면 죽게 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악인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면 살게 된다고 했다. 이제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길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며 하나님은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공정한 분이시라고 하신다.

17절은 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심판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방법이 즉흥적이고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의인들이 공의를 많이 행했다면 비록 죄를 행하더라도 그 동안 행한 공의를 봐서 좀 봐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악인들이 계속 악을 행하다가 공의를 조금 행했다고 의인으로 취급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행한 공의로 스스로 의인이 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한 공의의 양을 따지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느냐 아니면 대적하고 등을 돌리느냐를 보시는 분이다.

"네 민족" 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네 민족의 아들들" 이라는 뜻이다. 에스겔에서 6번이 나오는데 4번은 하나님께서 "네 민족의 아들들에게 가서 말하라" 고 할 때 썼다. 또 나머지 2번은 "네 민족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이라는 경우에 썼다. 이는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이 에스겔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는 경우에 썼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을 "내 백성" 이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철저히 타자화 하여 "네 민족의 아들들" 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인 에스겔이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공평하지 않다는 말은 에스겔의 세 군데에서 두번씩 여섯 번이 나오고 또 33:20절에서도 한번 더 나온다. 먼저 18:25절에 두 번이 나오는데 그 앞에는 아비의 죄가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에 공평하지 않다고 항의하는 장면이다. 18:29절에서도 두 번이 나오는데 18:25절과 연결된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을 의인과 악인으로 일반화 시켜 설명한 뒤 네 백성의 아들들이 공평하지 않다고 항의하는 장면이다. 오늘 말씀 33:17절에서도 두 번이 나오고 33:20절에서도 한번 나온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공의와 네 백성들의 공의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네 백성들은 아비가 악인이면 그 아들이 그 아비의 죄를 담당해서 처벌을 받아야 맞다는 것이다. 아비가 의인이면 비록 그 아들이 악인이라도 아비의 죄를 봐서 용서해줘야 맞다는 것이다. 네 백성들은 당시 근동지방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던 그룹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공동체 전체의 선과 악의 양에 따라 복을 주거나 벌을 줘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개인이 과거에 쌓아 놓은 공의의 양을 신용(credit)으로 입금시키고 죄악의 양을 빚(debit)으로 계산해서 남은 양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동체 전체를 도매금으로 벌하거나 복을 줄 마음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선 자들만 내 백성을 삼으시기로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각자가 과거에 쌓아 놓은 공의와 죄악의 대차대조표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현재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등을 돌리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다. 비록 죄인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서면 용서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다. 그런데 네 백성들은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네 백성들의 길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기 때문이다.

18절은 하나님의 공평함이 무엇인지 다시 설명한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죄악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함이라는 것이다. 19절은 반대로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가 그 정의와 공의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다. 정의와 공의를 행한 것이 과거의 죄악을 상쇄시키고 남은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하심으로 받아 주시는 것이다.

20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네 백성들은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한다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용서하시는 것이 바르지 못한 것이다. 죄인이 한번 의를 행했다고 용서하시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과 자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무자비한 네 백성들은 철저히 타자화 되어 버려진 것이다.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선 자들 만이 내 백성으로 안아 주시고 눈물 닦아 주신 것이다. 네 백성이라고 부르던 말을 20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집"이라고 부르신다. 이스라엘의 가문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혈통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 품에 안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하나님의 판결이 바르지 못하다고 외치던 모습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의 모습과 똑같다. 누가복음 15:11-32절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가 바로 그 모습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줄이면 돌탕) 불쌍히 여겨 달려가 안고 아들의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베풀었다. 죄인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섰기에 아버지가 달려가서 안아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그런데 15:27-30절에서 집에 있던 탕자는(집탕) 아버지의 처사가 바르지 못하다고 대든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맞아들이자 스스로 의롭다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도 에스겔 당시의 네 백성들과 똑같이 예수님의 처사가 바르지 못하다고 대든 것이다. 그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바른 길은 디도서 3:5절에도 나온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고 했다. 역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계시록 21:4절에서도 주님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하신 방식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원수들을 한없이 용서하고 참아주어야 한다. 그들이 돌아서면 언제든지 안아주고 눈물 닦아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는 것이고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거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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