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3:10-16 의인이라도 하나님을 등지고 불의한 일을 행하면 죽게 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악인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면 살게 된다.
이전 말씀에서는 모든 나라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 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자가 전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멸망하면 전하지 않은 자의 책임이지만 전했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듣지 않은 자들의 책임이라고 경고하셨다. 이제 자신들의 죄 때문에 살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아직 소망은 있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오늘 말씀도 역시 두가지 조건과 결과가 비교된다.
10절은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시며 이스라엘의 집에게 말하라고 하신다. 선지자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포자기한 채 자조 섞인 어조로 말한 것이다. 그 중심 되는 말은 허물과 죄이다. Block은 허물이란 주인에 대해 대들고 반역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죄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표시를 버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Block, 246). 하나님께 대들고 반역을 일으키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시까지 내 던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죄가 이미 쇠퇴하게 했으니 어떻게 살겠느냐 는 것이다.
쇠퇴한다는 말은 신체의 일부가 썩었다는 뜻이다. 허물과 죄악이 짓눌러서 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이나 의역을 해서 그 그림이 사라졌다. 쇠퇴한다는 말이나 짓눌러서 라는 말은 신체의 일부가 썩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신체의 일부에 세균이 감염되었다고 해도 피가 통한다면 우리 몸의 피 속에 있는 항체들이 싸워서 썩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가 통하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된 부분들이 그대로 다 썩어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몸 전체의 많은 부분이 다 썩었고 되살아날 희망은 전혀 없다며 숨을 헐떡이는 시체 같은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11 절은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이스라엘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셨다. 삶을 포기한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대신에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살인마가 아니다. 모두를 다 심판하여 완전히 멸망시키신다고 한 것은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바라며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족속을 부르며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다 용서하고 살려 주실 텐데 무엇 때문에 개죽음을 당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12-16절은 의인과 악인 두가지 경우를 대조하며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12절은 라도 범죄하면 죽을 것이고 죽을 악인이라도 돌이켜서 그 악에서 떠나면 산다며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말하고 있다. 12절은 먼저 의인의 경우를 말한다. 의인이란 그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거 자신이 쌓은 의가 자신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평생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더라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언약의 표시를 내던지면 죽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악인의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악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면 산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방향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면 사는 것이고 하나님을 등지고 돌아서면 죽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신이 그동안 행한 의로운 행위가 자신의 범죄를 상쇄시켜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았어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서면 죽는 것이다.
13절은 의인이 죽게 되는 경우이다. 가령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분명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공의를 믿고 불의한 일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가 행한 불의한 일을 인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는 산다고 말씀하시고는 왜 죽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산다고 하신 것은 현재 네가 그렇게 살면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금처럼 계속 지키면 산다는 뜻이지 무조건 산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14-15절은 반대로 악인이 사는 경우이다. 가령 하나님이 악인에게 너는 분명히 죽으리라 라고 하셨다고 해도 그가 만일 그 모든 죄에서 돌아서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분명히 산다는 것이다. 정의라는 말은 법률 용어인데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들을 뜻한다. 현명한 재판 기록에 따라 올바르게 행하면 산다는 것이다. 공의란 공정한 재판이라는 뜻이다. 공정하게 행하면 산다는 것이다.
15절은 그 예들이 나온다. 먼저 만약 악인이 저당물을 돌려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낸다면 이라는 조건이다. 고대의 저당물이란 주로 곡식을 빌려주고 물건을 담보로 잡은 것이다. 출애굽기 22:26절에서는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자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고 했다. 대부분 겉옷을 저당물로 잡는데 겉옷은 밤이 되면 이불 대신 덮고 자는 것이기에 밤새 추위에 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돌려 주라는 것이다. 저당물은 정당하게 취한 물건인 반면에 강탈한 물건은 강제로 빼앗은 물건이다. 이 경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려주라는 것이다.
또 15절 뒷부분은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않으면 이라는 조건이다. 율례란 본래 일꾼이 하루동안 해야 할 일의 양을 가리킨 말이다. 이는 날마다 지켜야 할 법들을 다발로 묶어 놓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생명의 율례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렇게 지키면 산다고 주신 율례들이다. 생명의 율례를 지킨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죄악을 범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은 열심히 하면서 하지 말라는 일은 안 하면 죽을 사람도 살게 된다는 것이다.
16절은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산다는 것이다. 14절에서 나온 정의와 공의가 다시 반복된다. 그가 현명한 재판기록인 하나님 말씀대로 현명하게 판단하여 살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공정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말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13절에서는 의인이 악을 행하면 그동안 행한 의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16절에서는 악인이 의를 행하면 그동안 행한 악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 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면 사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면 아무리 의로운 일을 많이 했어도 죽는 것이다. 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악인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스스로 의로운 일을 많이 해서 그 의를 많이 쌓아 놓고는 이제 맘대로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멸망의 소식이다.
디도서 3;5절에서 "우리를 구원 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 보혈의 피로 씻겨 주시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것이지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 그 길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