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2:1-2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강물을 더럽히는 바다괴물로 비유하며 장송곡을 지어 부르라 하셨다.
이전 말씀은 교만한 앗시리아가 멸망한 것과 같이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군대 역시 그렇게 영원한 멸망에 빠질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애굽 왕 바로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다의 괴물로 비유하고 있다.
1절의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지 열 두 해 째 되는 해의 날짜는 기원전 585년 3월 3일이다. 이는 33:21절에서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2달이 지난 때이다(Block, 200).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때이다. 애굽이 바벨론을 몰아내고 유다를 회복시켜 주길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도 유다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2절은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해 장송곡을 지어 부르라는 것이다. 이어서 바로 왕을 2인칭으로 부르면서 예언을 한다. 그러나 실상 이 예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다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에스겔은 바로에게 예언을 말하는 것처럼 해서 극적인 효과를 살려 전하는 것이다. 사실은 유다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은 스스로 사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장에서는 유다 왕가를 사자에 비유했었다.
사자는 당시 세계에서 왕가의 상징으로 널리 쓰였던 동물이다. 그래서 이집트 왕들은 누워있는 사자의 몸에 왕 자신들의 얼굴로 만든 스핑크스를 피라미드 옆에 세워놓은 것이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는 사실 왕의 상징인 사자가 아니고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악어는 바다에 살지 않는다. 따라서 바다 가운데의 악어라는 말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여호와를 대적하던 신화적인 괴물을 뜻하는 말이다(Block, 201; Dyer, 1291; Matthews, Ezek 32:2).
70인역 구약성서에서는 바다 가운데 사는 용이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신화적인 괴물을 뜻하는 말로 쓴 것이 분명하다.
이 괴물은 강에서 튀어나와 그 강들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악어가 강물을 더럽히는 모습이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Matthews는 애굽 왕 바로가 강물을 휘저어 진흙탕으로 만든 것을 세상에 무질서를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Matthews, Ezek 32:2). Dyer도 이러한 바로의 행동은 바벨론의 힘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설명했다(Dyer, 1291). Fausset도 역시 물이 이웃 나라들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했다(Fausset, 323).
그러나 Block은 이 괴물의 행동이 반역적이고 무질서하다고 했다(Block, 202).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Block은 이어서 34:18-19절에 나오는 남은 꼴을 밟으며 남은 물을 발로 더럽히는 숫양과 숫염소의 모습으로 설명하며 여호와께 대적하는 것이라 설명한다(Ibid.). Alexander는 애굽 왕 바로를 이처럼 물을 더럽히는 악어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그 힘 자랑이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것이라 말한다(Alexander, 822). Alexander는 3절 이후에 이어지는 그물에 잡힌 악어의 그림으로 그렇게 설명한 것이다.
악어가 강물을 더럽히는 그림을 바벨론을 의식해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바다의 괴물" 이라는 단어가 품은 의미를 간과한 것이다. 악어를 바다의 괴물로 표현한 것은 단순히 바벨론을 대적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괴물이라는 뜻이 이 그림에 숨겨진 뜻이다. 애굽 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다 괴물이고 계시록에 나오는 용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송곡은 애굽 왕 바로를 향해 부르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이 장송곡의 초점을 놓치게 된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함락된 지 약 두 달 뒤이고 아직도 그들은 애굽이 바벨론을 물리치고 유다를 회복시켜줘서 자신들이 돌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애굽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만 소망을 두라는 뜻이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면서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겪을 때가 많다.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도 쉽게 돈이나 세상의 힘있는 자들이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며 의지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쉽게 해결될 것 같이 보이는 우리의 고난의 본질은 사실상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