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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28:11-19

Dawn Word

에스겔 28:11-19

교만한 자를 완전히 멸하시는 하나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 에스겔 47장

2020. 1. 16.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28장 강해 설교

에스겔 28:11-19 에덴 동산에서 와 같은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던 두로 왕은 쫓겨나서 완전히 불에 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최고로 교만해져서 스스로 하나님인 체 하는 두로의 통치자는 그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에게 죽게 될 것이라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두로에 대한 장송곡이 또 다시 이어진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며 슬퍼하는 내용이 아니고 과거 에덴 동산에 있던 아름다움 같았는데 심판을 받아 쫓겨났다고 말한다.

11-12절 앞부분은 "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라는 새로운 예언을 알리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라고 명령하신다. 앞에서는 통치자(nagid) 라는 말을 썼는데 이번에는 왕(melek)이라는 말을 썼다. 히브리어에서 왕(melek) 이라는 말은 항상 이 땅의 왕에게만 쓴 말이다(Block, 103; Cooper, 266). 앞에서 스스로 최고 높은 신의 행세를 했기에 이번에는 두로왕이 단지 잠시 있다가 사라져 갈 이 땅의 왕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왕(melek)이라고 부른 것이다.

지으라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들어 올리라는 뜻이다. ESV와 NLT는 목소리를 높이 들어올려 장송곡을 부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하지만 NASB나 NIV는 장송곡 하나를 집어 든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이 말은 본래 물건을 높이 들어 올리는 그림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에스겔에서 수치나 죄악을 담당한다고 할 때 많이 썼다. 죄악이나 수치를 물건처럼 생각하고 들어 올리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애가를 지어 부르라는 뜻으로 쓰인 것도 역시 애가를 들어 올리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19:1; 26:17; 27:2; 27:32; 28:12; 32:2). 그렇다면 애가 하나를 골라서 집어 들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ESV나 NLT처럼 목소리를 높이 들어올려 장송곡을 부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 애가의 내용은 첫째로 완전한 도장이었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신화적인 장면으로 장식된 원통형이 유행했으나 이집트나 팔레스틴에서는 stamp seal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Levantine seal은 진귀한 돌이나 보석에 새겨서 만들기도 했다(Block, 104). 두로의 왕이 완전한 도장이었다는 말은 진귀한 보석에 새긴 최고로 가치 있는 귀한 도장과 같은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둘째로 지혜가 충족했다고 했다. 이는 4절에서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다는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지혜가 가득해서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다는 뜻이다. 또 온전히 아름다웠다는 말은 최고로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했다는 뜻일 것이다. 두로의 왕은 최고의 명예와 최고의 지혜와 부와 최고의 화려함을 지녔던 존재라는 것이다.

13절은 두로의 왕을 에덴 동산에 비유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셨던 에덴 동산과도 같다는 말은 최고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는 뜻이다. 에덴동산에 있던 각종 진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했다는 것이다. 왕의 옷에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대제사장의 옷에 있던 보석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보석의 숫자가 전혀 다르기에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9개의 보석으로 되어 있지만 칠십인역 구약성서에는 14개로 나오기 때문이다. 9개의 보석들은 황금에 박혀 있다고 되어 있다. 최고로 존귀한 존재로 꾸며졌다는 뜻이다. 네가 지음 받던 날에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다는 말은 악기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보석을 박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테두리들(bezels)을 만들어 놓았다는 뜻이다(Fausset, 311).

14절은 두로 왕을 에덴 동산을 지키던 그룹에 비유한다. 그러나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를 지키던 그룹들과는 다르다. 생명나무를 지키던 그룹들은 복수이지만 여기서 두로 왕은 에덴동산을 거닐던 그룹이라고 단수로 묘사한다(Block, 114). 에덴동산을 거닐던 그룹으로 묘사된 두로 왕은 16절에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고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Cooper는 이 표현이 아담을 묘사한 것이라고 말한다(Cooper, 266). 거룩한 하나님의 성산이란 말도 시온산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죄를 짓기 전에는 불타는 돌들 사이도 마음대로 왕래했던 아담과 하와 와도 같았다는 것이다.

15절은 두로가 지음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했다고 했다. 완전했다는 말은 창세기 17:1절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며 완전하라고 한 말과도 같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며 완전하길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아담을 창조하신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에 하나님은 아담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와와 함께 공범으로 범죄하여 불의가 드러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로 왕도 처음에는 그렇게 완전했는데 나중에는 불의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16절은 네 무역이 많음으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했다고 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탐욕이 두로 왕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탐욕 때문에 그 안에 폭력이 가득했고 범죄했던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은 것처럼 두로 왕도 많은 재물을 갖게 되자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더럽게 여겨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처럼 두로 왕도 그렇게 불타는 돌 사이에서 멸했다는 것이다.

17절은 두로 왕의 생각이 교만해진 이유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12절에 나온 온전히 아름다웠다는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어 온전히 아름다웠기 때문에 교만해진 것이다. 따라서 두로의 교만은 자신의 생각으로 막대한 부를 얻어 그렇게도 아름답게 자신을 장식하고는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된 것이다. 또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다고 했다. 영화롭다는 말은 밝게 빛이 난다는 뜻이다. 수많은 보석들로 인해 밝게 빛이 나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된 줄 알고 하나님 행세를 해서 그 지혜를 더럽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로 왕을 땅바닥에 던지고 다른 왕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모든 화려함을 다 빼앗아 버리시고 옷까지 벗겨서 땅바닥에 내던져 구경거리로 삼으신 것이다.

18절은 두로 왕의 죄를 지적한 것이다. 무역을 할 때 죄가 많고 불의했다는 것이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남을 속여서 돈을 많이 번 것이다. 그래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이 성소는 하나님의 성전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두로 왕이 누리던 에덴 동산을 뜻하는 말이다. 두로 왕이 살던 에덴 동산 같은 곳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14절에서는 불타는 돌들 사이를 마음대로 왕래했는데 16절에서는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망했다고 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불로 다 태워 모든 자들 앞에서 재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19절은 그래서 모든 만민들 중에 과거의 두로의 왕을 알던 자들이 다 놀란다는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다시는 있지 못하고 완전히 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불로 심판하시는 것은 부정한 것을 제하고 순수한 은과 같은 남은 자들을 얻어 거룩함을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두로를 불로 심판하신 것은 완전히 다 태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도록 완전히 멸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 동산에 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면 아담과 하와처럼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로 태우시는 것은 부정한 것을 제하고 순수한 은을 얻기 위해서이다.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순수한 은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로 왕처럼 스스로 교만해서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이 받는 환난은 재가되어 사라지는 환난이다. 문제는 환난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느냐 아니면 끝까지 스스로 하나님 행세하느냐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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