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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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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에스겔 28:1-10

교만하여 하나님 행세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2020. 1. 15.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28장 강해 설교

에스겔 28:1-10 스스로 하나님인 체 하는 두로의 통치자는 그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에게 죽게 될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침몰하는 두로를 보고 다른 배의 선원들은 통곡을 했고 해변의 나라들은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두로가 자신의 지혜와 재물과 영화를 자랑하며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까지 올랐기에 심판하셨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2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라는 공식으로 새로운 예언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을 알린다. 두로의 왕이라고 번역된 말은 왕이 아니라 지도자 또는 통치자이다. 두로의 통치자(nagid: a leader, ruler, prince)에게 말할 내용은 교만한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이란 말의 문자적인 뜻은 높은 마음이란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이란 우리 말이나 영어처럼 감정이 자리하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자리하는 곳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 생각을 높은 곳에 두었다는 뜻이다.

두로의 교만은 첫째 스스로 신(엘)이라 하는 것이다. 우가릿 본문들에 따르면 히브리어로 엘이란 말은 가나안의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신들을 가리키는 말이다(Block, 94). "나는 엘이다" 라는 말에 바로 이어서 "내가 엘로힘의 자리 곧 바다의 심장에 앉았다" 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엘이다" 라는 말은 "나는 여호와다" 라는 말과 비교될 수 있는 최고의 교만이다.

두로의 교만은 둘째로 두로의 통치자는 자신이 신적 권위를 지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다의 심장에 앉았다는 말은 두로의 통치자는 자신이 모든 신들의 왕좌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신들의 왕좌란 두로의 위치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두로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와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앉아 있다는 말은 아예 터를 잡고 산다는 뜻이다. 두로는 해상무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지중해의 모든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두로의 교만은 셋째로 신적 지혜를 가졌다는 것이다. 두로는 스스로 엘로힘의 심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지혜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하셨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이다.

3-5절에는 두로가 스스로 하나님 만큼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열된다. 3절에서는 다니엘보다 지혜롭다고 했다. 다니엘은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 가서 느부갓네살 앞에서 모든 미래를 다 알고 말해주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모든 지혜를 다 주셔서 알게 하시고 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두로의 통치자는 자신이 다니엘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감추어진 비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과도 같다. 4절은 그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기에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5절은 네 위대한 지혜와 네 무역으로 인해서 너는 네 재물을 늘려갔다는 것이다. 네 재물들 때문에 네 생각이 그렇게 교만해졌다는 것이다.

6절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법정에 서셔서 이처럼 교만한 두로에게 형을 선고하는 장면이다. 두로에게 이 같은 형을 선고하시는 이유는 두로가 엘로힘의 심장 같은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 그 죄이다.

7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두로가 이렇게 교만해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신다는 것이다. 첫째 그들이 칼을 빼어 두로의 교만의 근원인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겠다는 것이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란 두로가 지혜로 이룩한 재물과 아름다운 건축물들이다. 그것을 다 무너뜨리고 가져가는 것이다. 둘째 두로의 영화를 치신다는 것은 두로의 통치자의 신적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먼저 교만의 근원들을 다 무너뜨리고 가져간 뒤 그 통치자를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다는 뜻이다. 셋째 8절은 구덩이에 빠뜨린다고 했다. 바다의 심장 가운데서 죽게 한다고 했다. 스스로 바다의 심장에 앉아 살면서 신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그 바다의 심장 깊은 곳에 빠져 죽는다는 것이다.

9절은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나는 엘로힘이다" 라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아니라는 것이다. 너는 저를 찌르는 자 앞에서 사람일 뿐 엘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로의 통치자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증명해 보이시겠다는 뜻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두로의 통치자를 찔러서 죽일 때 죽으면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이다. 10절은 네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한다고 하셨다. 당시 페니키아 사람들도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인 것을 자랑했던 것처럼 저들도 자신들의 할례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러한 교만은 이들이 무시하던 할례 받지 않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엘로힘이라고 주장했던 두로의 통치자에게 최고의 모욕이다.

이제 보니 두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며 조롱한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웃의 멸망을 기뻐하고 박수를 친 것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완전히 망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믿는 자들도 교회에서 스스로 자신을 높여 하나님 행세를 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들도 교회를 잘 섬겨서 다른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다 보면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기 마련이다. 그렇게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행세 할 바에는 차라리 믿지 않고 살다가 멸망하는 편이 낫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을 들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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