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7:3b-11 두로는 과거에 최고 호화롭게 만들어지고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배에 최고의 선원들과 용병들까지 갖추고 사업도 최고로 잘 되어서 최고로 잘 나가던 배와 같았다.
이전 말씀에서는 지중해 연안의 무역권을 독점하고 있던 두로의 죽음을 두고 장송곡을 지어 부르라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두로를 배에 비유하며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회상하는 노래이다.
3절 뒷부분도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라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오, 두로!" 라고 부르며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완벽한 미인이라고 자화자찬 하는 모습과도 같다. 두로가 스스로 자기 만족에 빠져 교만하게 자랑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다. 두로를 최고로 아름답게 지어진 배에 비유해서 노래한다.
4절은 네 경계가 바다 가운데 있다고 했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이어서 너를 만든 자가 네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과도 같다.
5절은 이 배의 판자들은 모두 스닐의 잣나무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스닐이란 헬몬산을 가리키는 아모리 족속의 언어이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이고 일년 중 짧은 기간을 빼고는 항상 꼭대기에 흰 눈이 있는 산이다. 그렇게 높은 산에 올라가 최고로 좋은 목재를 베어다가 이 배의 몸체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돛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역시 헬몬산 인근의 레바논 산맥에서 가져온 백향목은 최고로 값비싸고 튼튼한 목재였다.
6절은 바산의 상수리 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다고 했다. 바산은 오늘날 골란고원이고 항상 푸른 풀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상수리 나무는 질기고 물에 젖어도 강하기에 노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재료이다. 또한 깃딤 섬의 황양목으로 갑판을 만들었고 상아로 꾸몄다고 했다. 깃딤섬이란 Cyprus를 말하고 황양목이란 cypress 나무를 말한다. 아름다운 나무로 만들고 상아로 장식을 했다니 얼마나 화려한 배의 모습인지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7절은 애굽의 수 놓은 가는 베로 돛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옷감은 아주 값비싼 고급 옷감이다. 이러한 돛은 또한 깃발의 역할도 했다.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염료는 왕실에서나 쓰는 색깔이다. 엘리사란 Cyrus를 뜻하는 지명이라고 한다(Block, 61). 역시 최고급 천으로 햇빛을 가리고 비를 막도록 한 것이다.
8절은 시돈은 두로에서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25마일 올라간 곳에 있다. 아르왓은 북쪽으로 95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다. 둘 다 노련한 선원들이 많은 도시이다. 선원들 역시 최고의 경험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곳 사람들은 오늘날도 항해에 익숙한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Fausset, 305). 이어서 "두로! 네 가운데 있는 지혜자가 네 선장이 되었다" 라고 말한다. 최고로 지혜 있는 자가 배를 운행했다는 것이다.
9절은 그발의 노인들과 지혜자들이 네 가운데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발은 오늘날 베이루트와 트리폴리 사이에 있던 숙련된 기술자들로 유명했던 페니키아의 도시이다(Fausset, 305). 최고의 기술자들이 배의 틈을 막았다는 것이다. 배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바다의 모든 배들과 그 선원들이 두로와 무역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데다가 사업까지 최고로 잘되었다는 것이다.
10절은 룻은 활을 잘 쏘는 궁수들로 유명한 소아시아의 도시이다(이사야 66:19).
페르샤와 룻과 붓에서 온 최고로 잘 훈련된 용병들을 고용했다는 것이다. 네 가운데에서 방패와 투구를 달아 네 영광을 나타냈다고 했다. 배에 달아 놓은 번쩍거리는 방패와 이러한 용병들이 쓰고 있던 빛나는 투구가 바로 두로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제 11절은 배로 비유된 이러한 두로 성을 지키는 모습이다. 아르왓 사람과 네 군대는 사방 성 위에 있었다고 했다. 용사들은 여러 망대에 있었다고 했다. 성의 사면에 방패를 달아 놓은 모습이 최고로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두로를 이처럼 최고로 아름다우면서도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고 최고의 군대들이 지키고 있는 배로 비유했다. 이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두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 노래는 두로의 장례식에서 장송곡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영화와 명성을 누리며 살고 있더라도 남의 불행을 두고 기뻐한다면 하나님께서 두로처럼 만드실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도 두로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매를 들고 때리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런데 매를 맞는 아이를 보고 조롱하는 태도로 산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가지고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