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7:1-3a 지중해 연안의 무역권을 독점하고 있던 두로의 죽음을 두고 장송곡을 지어 부르라.
이전 말씀에서는 두로가 완전히 물에 잠기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완전히 뚜껑까지 닫힌 것과 같다고 했다. 이제 27장에서는 그렇게 죽은 두로를 위해 장사를 지내는 모습이다. 이렇게 죽은 두로를 위해 27장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이다. 그 중에서 1-3a 는 파선되어 침몰한 배와 같은 두로를 위해 슬픈 노래를 시작하는 부분이다.
1절은 주의 말씀에 에스겔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고 시작한다. 이제 새로운 예언의 말씀을 받아서 전한다는 뜻이다. 2절에서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신 것도 역시 새로운 예언을 말씀하신다는 신호이다. 두로를 위해 애가를 지으라고 했다. 애가는 두로가 죽었기에 장송곡을 지으라는 뜻이다.
3절 앞부분은 두로를 향하여 말하라는 것을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바다
어귀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바다 어귀는 바다의 입구에 자리잡고 산다는 것이다. 이는 바다
입구를 지키며 다스리는 바다의 통치자의 모습이다(Block, 54). 성의 입구에 앉아 재판하던 재판관의 모습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바다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지중해의 항구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 라고 말한다. 거래하는 자라는 말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간다는 뜻이다. 이는 물건을 팔기 위해 배의 노를 저어 이리 저리 항해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두로의 권위는 정치적 권위가 아니라 경제적 권위이다. 지중해 연안의 섬들과 모든 땅들에게 배를 타고 가서 물건을 사고 파는 권한을 홀로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지 맞는 사업을 독점하고 있던 두로가 망했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깊은 바다에 빠져 죽었고 그 시체를 깊은 웅덩이에 던져 넣었고 그 뚜껑까지 덮어 버렸다고 했다. 이제 그렇게 죽은 두로를 두고 장송곡을 지어 부르는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지중해 연안의 경제권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죽었기에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고 큰 돈을 벌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해도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이웃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하신다는 것이다. 남 보다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고린도전서 12:23절에 나오는 생식기 같은 지체들을 아래로 보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도 두로처럼 그렇게 관 뚜껑에 못질 하시고 오늘 말씀처럼 장송곡을 지어 부르게 하실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두로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