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4:15-27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을 때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처럼 행하게 하고 사람들이 궁금하게 하여 그 뜻을 전하게 하시고 그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셔서 사람들이 에스겔이 전하는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정결하게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예루살렘을 녹슨 가마솥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완전히 태워 버리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에스겔의 아내가 죽은 것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한다.
오늘 말씀 15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새로운 예언을 시작하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시작한다. 또 27절은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라는 일반적인 끝맺음으로 마친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하나의 예언으로 취급되어져야 한다. 이 부분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5-24절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이고 25-27절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것이기에 결국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에 관한 예언이다.
16절은 "사람의 아들아!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에스겔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주신다는 뜻이다. 그 놀라운 일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은 한 번 쳐서 빼앗는다는 것이다.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이란 에스겔의 아내를 가리킨다. 아내를 한 번 쳐서 빼앗는다는 말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있던 아내가 갑자기 죽게 된다는 뜻이다. Cooper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아내의 임박한 죽음을 알려준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가르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죽게 하신 것이 아니라고 했다(Cooper, 238).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연극을 통해 보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극을 위해 에스겔의 아내를 죽게 하시는 잔인한 분은 아니신 것이다.
이어서 10개의 명령어가 이어진다. 하지 말라는 명령과 하라는 명령이 섞여 있다. 맨 처음 나오는 세 쌍의 명령어는 16절 뒷부분에 나온다. 이 세 쌍은 아내가 죽었을 때 누구나 즉시 자동으로 그 슬픔을 표현하던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먼저 슬퍼하지 말라는 말은 가슴을 치며 곡을 하는 것을 뜻한다. 창세기 23:2절에서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슬퍼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열왕기상13:30에서 늙은 선지자가 사자에게 물려 죽은 시체를 자기 무덤에 두고 슬피 운다고 할 때 쓴 말과도 같은 말이다. 이는 시체를 무덤에 둘 때 가슴을 치며 곡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슬픔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다. 두 번째 명령어는 울지도 말라는 말이다. 그렇게 가슴을 치며 곡소리를 하다가 슬픔을 못 이겨 울게 되는데 그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창세기 23:2절에서도 사라가 죽었을 때 그렇게 행동과 소리로 슬픔을 나타내다가 울었다고 했다. 세번째 명령어는 눈물을 흘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네 번째 명령어는 한숨은 쉬라는 것이다. 다섯째 명령어는 그러나 소리는 내지 말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 명령어는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상복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맨발로 땅바닥에 앉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일곱 번째 명령어는 수건을 동이라는 것이다. 상주가 입는 상복을 입는 대신에 축제 때 머리에 쓰는 수건을 두르라는 것이다. 여덟 번째 명령어는 슬픔을 나타내는 맨발 대신에 신발을 신으라는 것이다. 아홉 번째 명령어는 윗 입술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새번역은 수염을 가리지 말라고 번역했다. 열 번째 명령어는 초상집 음식을 차려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말도 안되는 연극을 하라는 뜻이다. 아내가 죽었는데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런 에스겔을 보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에스겔에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18절을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백성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리고 아침에 내가 명령을 받은 대로 행했다." 18절의 때를 나타내는 말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은 에스겔이 아침에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한 뒤 그날 저녁에 그의 아내가 죽었고 그 다음날 아침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동했다고 해석했다(Cooper, 239; Dyer, 1274; Thompson, 154). 이렇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아내를 갑자기 죽게 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Block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날 저녁에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에스겔은 여호와께 받은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Block, 790). 16절에서 갑자기 죽게 된다고 하신 말씀과 연결해 볼 때 Block의 해석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19절은 이러한 에스겔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질문한 내용이다. 에스겔이 이상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자신들에게 무슨 의미를 주려는 것인지 말해 달라는 것이다. 20절은 바로 그 때 에스겔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은 21절에 나오는데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말하라" 라는 말에 이어 "보라!" 라는 말이 원어에 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인가? 그 볼 거리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의 눈에 기뻐하는 것이고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는 성소를 더럽힌다는 것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와서 그 성소를 짓밟게 한다는 것이다.
16절에서도 "보라!" 라는 말 다음에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에 쳐서 빼앗으리니" 라고 했다. 이것으로 볼 때 에스겔과 에스겔의 아내는 하나님과 그 성전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힘이고 자신들의 눈에 기뻐하는 자랑거리이고 열정적으로 마음에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마치 에스겔의 아내가 에스겔에게 그렇게 기뻐하는 대상인 것과도 같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 것은 예루살렘에 남겨두고 간 사랑하는 자녀들이 칼에 엎드러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열왕기상 20:5-6절에서는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자녀들이라고 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의 눈에 기뻐하는 것은 예루살렘에 두고 온 성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두고 온 자녀들인 것이다.
22절은 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한다고 했다. 23절은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와 있기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성전을 더럽히고 자녀들을 죽인 것에 대해 슬픔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원망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바빌로니아 사람들 때문에 슬픔을 감추고 한숨 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바라보며 눈으로만 그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24절은 22-23절에 대한 설명이다. 에스겔이 행한 일이 표징이 되어 그가 행한대로 그대로 다 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25-27절은 예루살렘 멸망의 소식을 듣게 되는 내용이다. 25절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시며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데려가는 날이라고 했다. 개역은 간절히 생각하는 것과 자녀들을 하나로 합쳐서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분리해서 번역했다. 이는 21절의 반복이기에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마지막 자녀를 데려가는 날을 따로 떼어 번역해야 한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도 따로 떼어 번역했다.
26절은 그렇게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고 그 자녀들이 칼에 찔려 죽게 된 그 날에 예루살렘 성에서 도피한 자가 바빌로니아에 와서 그 일을 들려 준다는 것이다. 도피한 자들이란 예루살렘 멸망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먼저 끌려온 사람들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뜻이다.
27절은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않는다고 했다. 33:31-22절에는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의 함락 소식을 들려 주었을 때에야 주님의 권능이 에스겔의 입을 열어 주셨다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27절에서 입이 열려서 말하는 것은 에스겔의 입이 열린다는 것이다. 에스겔이 말과 행동으로 전한 것이 사실 그대로 드러날 때에야 사람들은 에스겔이 참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때에야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여호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에스겔의 눈에 기뻐하는 아내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눈에 기뻐하시는 성전이 더럽혀진 것에 대한 비유이다. 예루살렘의 중심인 성전은 더럽혀지고 그렇게도 음란한 오홀리바와 같은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한 것이다. 에스겔이 연극으로 보여준 그 이상한 행동과 그 의미를 말해 준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에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때가 되면 분명히 그 모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이고 그 때에야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에스겔 시대에 바빌로니아로 잡혀간 사람들과 같이 멸망의 길을 가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