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3:1-7 돈 많은 두로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하: 돈을 의지하지 않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돈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이전 말씀은 세상 나라를 의지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던 예루살렘의 지도자 셉나를 멸하시고 잘 박힌 못과 같은 엘리야김을 세우시지만 인간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고 했다. 이제 이스라엘 북쪽의 페니키아의 큰 항구인 두로와 시돈에 대한 경고로 넘어간다. 두로와 시돈은 큰 무역항이기에 돈을 의지하던 사람들의 대표로 등장한 것이다.
1절은 두로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다시스의 배들에게 슬피 울라고 한다. 다시스의 배들의 집인 두로가 파멸되었다고 한다. 다시스란 스페인의 항구이다. 페니키아가 바다를 지배했고 12세기 초 스페인까지 식민지로 삼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Wiseman, People of Old Testament Times, P. 280). 오늘날 육지 길로는 3000마일이 넘는거리이므로 당시 페니키아 사람들의 세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시스까지 항해를 햇다가 집인 두로로 돌아오려는데 집인 두로가 파멸되었기에 들어갈 집도 없고 닻을 내릴 항구도 없다는 것이다.
2절에서 "너희 섬 백성들" 이란 말은 원어에서는 "너희, 곧 해변에 사는 백성들" 이란 뜻이다.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의 중심도시였기에 해변에 사는 백성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웃도시인 시돈의 백성들도 말한 것이다. 맛소라 사본에는 "부유하게 만들어 준" 이라고 되어있지만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1QIs 사본에서는 Messengers 라고 되어있다. 히브리어에서는 둘 다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어의 NASB, NJB, RSV는 Messenger라고 번역했다. 소식 전하는 이들이 바다를 건너왔으니 잠잠하라는 것이다.
3절은 이러한 페니키아 사람들이 단순히 곡식을 운반해 주고 삯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곡식을 사다가 파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나일강 가에서 수확한 엄청난 곡식을 싸게 사다가 비싸게 팔아서 큰 이익을 남겼을 것이다. 그래서 뭇 나라의 시장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새번역은 4절을 "너 바다의 요새야 … 너의 어머니인 바다" 라고 번역했지만 개역은 "바다 곧 바다의 요새" 라고 번역했다. "그 바다, 즉 바다의 요새" 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말이 된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바다를 신으로 섬겼고 바다를 의지하고 살았다. 바다가 두로와 시돈을 낳지도 않았고 기른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바다는 더 이상 두로와 시돈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바다가 도와주고 보호해 주어서 바다를 항해하면서 큰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5절은 두로의 파멸 소식이 이집트에 전해지면 이집트 마저 충격을 받고 낙심한다는 것이다. 페니키아와 이집트는 상업적으로 동업자였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생산한 곡식을 두로가 팔아줘서 이집트도 남는 곡식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두로가 망했다니 이젠 이집트도 망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일강 하구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곡식들이 갈곳이 없어 썩게 되는 것이다.
6절은 두로가 중심지인 페니키아 사람들에게 이제 스페인으로나 건너가라고 한다. 이젠 두로를 통해서 살길은 막혔기 때문에 그 먼 땅끝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절은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그 멀리 있는 스페인까지 식민지로 만들었던 두로의 꼴을 보고 한탄하는 모습이다.
두로의 멸망은 이사야 시대인 기원전 8세기로부터 400년쯤 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 인해 성취된다. 알렉산더는 2000명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30000명을 노예로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 그렇게도 큰 도시였던 두로는 인구 몇천명의 작은 소도시로 전락했다.
두로에 대한 심판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적인 두로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의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인 것이다. 오늘날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돈을 의지하고 산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하나님으로 삼고 산다. 그러나 만약 돈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런 돈은 없는 것이 축복이다. 잠시 세상에 살면서 돈을 풍족하게 쓰다가 영원히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 했고 먹을 것과 덮을 것만 있으면 만족할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돈을 돌같이 여기고 사용은 하되 사랑하지는 말자. 돈을 사랑하면 그 순간부터 돈이 하나님이되고 그 돈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하나님만 의지하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대로 살아가자. 그것이 복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