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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22:1-14;22:15-25

Dawn Word

이사야 22:1-14;22:15-25

이사야는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군대들만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방어하려다가

2018. 8. 17.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22장 강해 설교

이사야 22:1-14 이사야는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군대들만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방어하려다가 자포자기한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고 통곡하며 예언하였다.

이전 말씀에서는 아라비아의 게달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이 없어 난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기에 거의 다 멸하시고 적은 수만 남긴다고 하셨다. 이제 심판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 예루살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기에 심판하시는 것이다.

1절은 환상의 골짜기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라고 한다. 환상의 골짜기란 21:1절에서 바빌론에 관한 경고를 “해변광야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 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이는 실제 골짜기가 아니고 비유이다. 예루살렘은 사실 산 위에 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안목으로 보면 헬몬산도 있고 주변에 높은 산들이 많이 있어 골짜기로 볼 수도 있다. 이는 하나님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환상의 골짜기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환상 가운데 빠져있는 사람들을 어두운 골짜기로 비유한 것이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예언일 수 없으니 실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을 지으려고 애를 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서구의 학자들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언은 믿지 않기에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에 바빌론과 그런 전쟁을 갖지는 않았었기에 분명히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미리 알려주셨다라고 믿으면 간단한 것을 가지고 복잡하게 따지며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다.

1절 뒷부분은 “너희가 무슨 변을 당하였기에, 모두 지붕에 올라가 있느냐?” 라고 묻는다. 이어서 2절은 “폭풍으로 가득 찬 성읍, 법석과 도성으로 가득찬 성읍아, 이번 전쟁에 죽은 사람들은 칼을 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가 죽은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강한 나라들을 의지하고 살았기에 저들은 눈에 보이는 위험만 보고 야단 법석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3절은 “너희 지도자들은 다 도망치기에 바빴고, 활도 한 번 쏘아 보지 못하고 사로 잡혔다. 사로잡힌 너희들도, 아직 적군이 멀리 있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 가다가 붙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라고 한다. 지도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패해서 적의 포로가 되어야 옳은 것이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비겁하게 겁을 먹고 도망가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만 보고 두려워하며 야단 법석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4절에서 이사야는 “그러므로 내가 통곡한다. 다들 비켜라! 혼자서 통곡할 터이니, 나를 내버려 두어라! 내 딸 백성의 도성이 망하였다고,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라고 말한다. 이러한 답답하고 미련한 백성들 때문에 이사야는 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통곡을 하는가 5절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친히 "환상 골짜기"에, 혼란과 학대와 혼란을 일으키시는 날을 이르게 하였다. 성벽이 헐리고,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는 소리가 산에까지 사무쳤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이방사람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큰 혼란이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만 두려워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이사야는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6절에서 엘람의 군대가 화살통을 매고 기마대와 병거대와 함께 왔고 그르 군대는 방패를 들고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바빌론 군대의 일부가 되어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온다는 것이다. 7절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기름진 골짜기들” 은 이들 부대의 주둔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8절 앞부분은 유다의 방어선이 뚫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어는 그가 유다의 방어벽을 치워버렸다 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방어벽을 치워버렸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8절 뒷부분에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기를 준비했다. 9절에서는 성벽을 살펴보고 포위되었을 때 필요한 물을 저장했다. 10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집들을 세어 본 것은 군대의 숫자를 세어본 것이다. 뚫린 성벽도 막았다. 11절은 옛못에 물을 대려고 저수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11절 뒷부분의 “너희는 일이 이렇게 되도록 하신 분을 의지하지 않고, 이 일을 옛적부터 계획하신 분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라는 데에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노력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12절에서는 그러한 날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12절은 그런 위기가 닥치면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통곡하고 슬피 울라고 하셨다. 머리털을 밀고, 상복을 몸에 두르라고 하셨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너희가 어떻게 하였느냐 ? 너희는 오히려 흥청망청 소를 잡고 양을 잡고,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하였다” 라는 것이다. 저들에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죽기전에 실컷 먹고 마셔나 보고 죽자고 했던 것이다. 14절은 그래서 “이 죄는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 받지 못한다" 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문제는 눈에 보이는 위기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있다. 어려운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안되면 자포자기 하고 속된 말로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만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눈에 보이는 군대만 보았고 하나님의 군대는 보지 못했다. 우리도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보고 낙심만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자. 중대한 위기에 서 있을 때 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슬퍼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 것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우리는 슬퍼하고 낙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자. 어려울 때 일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때이다.

이사야 22:15-25 강한 나라를 의지하며 세상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던 셉나는 하나님께서 멸하시고 엘리야김을 그 자리에 세우겠지만 엘리야김도 영원히 의지할 것은 못된다.

이전 말씀에서는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군대들만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방어하려다가 자포자기한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왔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러한 예루살렘 사람들 중 한사람을 대표로 예로 들어 책망하고 새 사람을 세우겠다고 한다.

15절은 궁중의 일을 책임진 총 책임자 셉나에게 전하라는 말이 나온다. 셉나는 왕 다음가는 자리에 있던 사람일 것이다. 셉나는 이집트와 연합을 주도하던 사람들 중 대표일 것이다. 그가 타던 화려한 병거들도 이집트 산 병거일 것이다. 이 사람은 높은 곳에 바위를 파고 자신을 기념할 화려한 무덤을 만들던 자이다. 셉나는 세상의 물질과 이웃의 강한 나라를 의지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던 자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집 몇채 값이 되는 최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이 죽을 무덤은 세계적인 부자들의 대저택처럼 크고 화려하게 짓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셉나를 단단히 묶어서 던지신다 했다. 공처럼 말아서 넓고 아늑한 땅으로 굴려버리신다 했다. 넓고 아늑한 땅이란 원어에서 넓은 땅이다. 셉나는 그 화려한 병거들 옆에서 죽을 것이라 했다. 이 사람이 즐기던 모든 것들이 다 헛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끌어 내리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셉나는 앗시리아로 끌려가서 죽었을 것이다.

20절은 그날이 오면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셉나의 자리에 앉히겠다는 것이다. 셉나가 입던 국무총리의 관복을 입히고 셉나의 띠를 띠게 하고 셉나가 갖고 있던 권력을 그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의 어른이 된다고 했다. 22절을 보면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쇠를 어깨에 매고 다녔기 때문이다. 엘리야김은 다윗의 가문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되고 열고 닫는 권한은 엘리야김 혼자서 갖는다는 것이다.

23절은 이러한 엘리야김을 단단한 곳에 잘 박힌 못에 비유한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가문의 영예를 빛낸다고 하셨다. 24절은 그렇게 잘 박힌 못과 같은 엘리야김 위에 그의 가문의 영광이 걸려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나오는 종지에서 항아리는 작은 인물에서 큰 인물들을 비유로 나타낸 것이다. 엘리야김 가문의 모든 인물들의 영광이 엘리야김에게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25절은 깜짝 놀랄만한 말이다. 그렇게 단단한 곳에 잘 박힌 못이 삭아서 부러질 것이고 그에게 걸려있던 모든 영광들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이다. 수많은 질그릇들로 비유된 엘리야김 가문의 인재들이 모두 다 죽는다는 것이다. 영광이 있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죽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아무리 하나님이 세우신 신실한 종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삭아서 부러지는 못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대신 이집트나 앗시리아같은 주변의 강한 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지만 그 사람 자체를 믿고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직 그가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그가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만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잘 박힌 못과도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녹슬어 못쓰게 되는 것이다.영원히 믿고 의지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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