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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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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이사야 21장

앞으로 유다가 믿고 의지할 바빌론도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2018. 8. 17.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21장 강해 설교

이사야 21:1-10 앞으로 유다가 믿고 의지할 바빌론도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19-20장은 유다가 믿고 의지하던 이집트가 멸망하는 모습이 나왔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바빌론 멸망에 관한 환상이 이어진다.

1절은 해변광야란 페르시아만에 접해있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땅을 말한다. 그런데 이곳은 진짜 사막이기에 조롱하는 투의 말이다. 그곳은 쓸모없는 사막이기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남쪽 광야에서 불어오는 회오리 바람이란 겨울철에 이스라엘의 동쪽과 동남쪽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한다. 그런데 이 바람은 정말 갑작스런 강한 바람이다. 갑자기 나타나 싹쓸이하는 무시무시한 바람이다. 그렇게 조롱하던 바다사막에서 그 바람처럼 무시무시한 것이 온다는 것이다. 한글성경에서는 적병이나 침략자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그것이 무엇인지 원어에는 밝히고 있지 않다.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겨울의 동남풍처럼 갑자기 무섭게 다가오기에 긴장하며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2절은 끔찍한 계시를 보았다고 한다. 배신하는 자가 배신하고 파괴하는 자가 파괴한다는 것이다. 바빌론이 믿는 자가 배신한다는 것이다. 바빌론이 믿는자가 바빌론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엘람이란 페르샤 사람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페르샤 사람들에게 공격하라고 하고 메대에게는 포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사야가 쓰여진 시기가 기원전 700년경이라는 것이다. 메대와 페르샤가 바빌론을 경격하여 무너뜨런 것은 기원전 539년이기에 학자들은 이해가 안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사야 당시에는 메대와 바사는 바빌론의 친구 나라들이었고 바빌론에게 순종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빌론이 믿던 메대와 페르샤가 바빌론을 공격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것이다.

또 "내가 바빌론의 횡포를 그치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하겠다" 라고 했다. 바빌론이 세계를 지배한 제국이 된 것은 기원전 605년 이후라야 한다. 아직 메소포타미아의 한쪽 구석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나라가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것을 그치게 한다니 이러한 예언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보통 예언은 임박한 일을 말한 것이고 이루어진 뒤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먼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신 것이다. 당시 서로 친한 나라들이 배신하게 되기에 유다는 강한 이웃나라들을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3절에서 이사야는 "나는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아기를 낳는 산모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온 몸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그 말씀을 듣고 귀가 멀었으며 그 광경을 보고 눈이 멀었다" 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던 환상 때문이다. 단순히 두려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이 그렇게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이다. 이사야가 겪은 고통은 유다

백성이 앞으로 당할 일들이다. 적인 바빌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사실 유다에게는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임할 심판은 단순히 바빌론에 대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빌론을 의지하던 유다에게도 임하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4절은 그래서 "내가 그처럼 보고 싶어하던 새벽빛은 도리어 나를 무서워 떨게 하였다"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의 편을 들어 주셔서 대적을 멸망시키고 자기들은 잘살게 해주실 것으로 알았는데 하나님은 유다 역시 심판하시는 것이다. 5절은 마치 다니엘 5장의 벨사살 왕의 잔치자리 모습과도 같다. 잔칫상을 벌이고 있는데 주변이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있는 모습이다. 잔치를 벌이다 말고 갑자기 방패를 들라고 명령을 한다.

앞에서는 바빌론의 왕궁의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었는데 이제 6-9절은 유다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6절은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파숫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대로 보고하라고 한다. 7절은 기마병과 함께 오는 병거를 보거나 나귀나 낙타를 탄 사람들이 나타나면 주의하여 살펴보라고 하라고 한다. 보통 전쟁 때는 기마별들이 말을 타는 것이다. 나귀나 낙타는 상인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은 전쟁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페르샤 군대의 모습이다.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샤 군대가 말 뿐 아니라 나귀와 낙타를 타고 바빌론을 휩쓸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른다. 파수꾼은 계속 경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8절은 마치 마태복음 25:1-13절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와도 같이 밤을 새워 지켜보며 나타나길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렇게 나타나길 예상하고 있었다면 나타난다고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드디어 왔다 라는 투로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9절은 깜짝 놀라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기마병이 무리지어 온다. 누군가가 소리치기를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조각된 신상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라고 외친다.

10절은 이러한 환상을 전한 뒤에 이사야가 탄식하는 것이다. "짓밟히던 나의 겨례여, 타작 마당에서 으깨지던 나의 동포여" 라고 말한다. 이는 타작마당에서 소가 연자방아를 돌려 곡식을 짓이기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처럼 짓밟히는 것을 내다보며 한탄을 한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한 것을 그대들에게 전한다는 것이다. 선지자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힐 동포들에 대해 말하니 정말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하지만 타락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주변의 강한 나라들만 의지한다. 그래서 모두 다 짓뭉개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과도 같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 주셔서 항상 승리하게 하시고 놀라운 축복만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들을 의지하면서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내려놓고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야 한다.

이사야 21:11-12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또다시 밤이 온다.

11 이것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세일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 12 파수꾼이 대답한다. "아침이 곧 온다. 그러나 또다시 밤이 온다. 묻고 싶거든, 물어 보아라. 다시 와서 물어 보아라."

이전 말씀은 강한 민족에게 짓밟히면서도 강한 민족들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에게 바빌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 모든 것들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에돔에 대한 예언이다. 정확히 말하면 에돔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에돔의 두마에 대한 예언이다. 두마는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100마일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아시스에 있던 도시이다. 바빌론의 입장에서는 서쪽으로 교역할 중요한 교역로이다.

에돔의 입장에서는 두마가 막힌다면 동쪽으로 교역할 길이 막히는 것이다. .

11절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라 했다. 세일은 에돔을 말하는 것이다. 새번역은 다르게 번역했지만 원어는 "밤으로부터 얼마나 지났니?"

라는 말이 똑같이 두번 반복된 것이다. 어서 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지루한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밤은 몰론 진짜 밤이 아니고 비유이다.

12절에서 파수꾼이 대답한다. "아침이 곧 온다. 그러나 또 다시 밤이 온다" 아침이 오지만 또 밤이 온다는 것은 두가지 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는 이사야 당시였던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산헤립은 두마를 점령했고 그것이 이사야 당시 이미 성취된 밤이다. 그러나 또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왕에의해 점 령을 당한다. 따라서 이사야는 현재 두마가 밤이고 또 낮이 되겠지만 또다시 어두운 밤이 온다는 것이다. 묻고 싶으면 물어보아라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서 물어 보아라 라고 했다. 빨리 낮이 왔으면 하고 계속 와서 묻는 것이다. 다시 낮이 되면 두마는 수많은 상인들로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잘먹고 잘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밤이 온다는 것이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에게도 밤과 낮이 끊임없이 반복이 된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사사를 보내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또 다시 우상숭배를 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낮과 밤이 반복이 된다. 모든 것이 잘될 때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는 밤이 되게 하셔서 어두운 가운데서 회개하도록 하신다. 아침이 오면 어느새 잊고 또 다시 교만해진다.

내 생각으로 겸손해지려고 하면 끈임없이 밤은 반복이 된다. 내 생각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진짜로 낮아져야 한다. 그런데 진짜 낮아지지 않고 조금만 낮아지는 흉내만 내면서 어느새 하나님 놀이를 하고 있다. 겸손이란 내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죽도록 싫은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다면 사랑하는 것이 겸손이다. 그런데 계속 정죄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그게 교만이다. 그래서 다시 밤이 온다. 어두움 가운데 고통을 느끼며 깨닫게 하시려고 이사야 21:13-17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게달 사람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두마를 반복해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라비아의 게달 지역 안에 있는 드단과 데마를 심판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드단은 에돔의 두마에서 남동쪽으로 200마일 쯤 떨어진 도시이다. 데마는 다시 드단에서 90마일 쯤 남동쪽으로 떨어진 도시이다. 이 도시들은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향료를 운반하던 중요한 교역로이다.

13-14절은 나란히 대조되는 구절이다. 아라비아의 메마른 덤불 속에서 밤을 지새는 드단의 행상들과 데마에 집을 짓고 사는 거주민들을 대조한다. 드단의 행상들에게는 물을 가지고 가까이 오라고 했고 데마의 주민들에게는 빵을 가지고 만나라고 했다. 사막에서 방황하다가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는 먼저 물이 필요한 것이다. 물로 목을 축인 뒤에는 데마의 주민들에게는 빵을 가지고 와서 만나라는 것이다.

15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들은 칼일 피하여 도망다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화살이 그들을 꿰뚫으려고 하고 전쟁이 그들의 목숨을 노리기 때문에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다.

16절은 여호와께서 일년을 센다고 하셨다. 그런데 머슴살이가 1년후면 끝나는 사람이 날을 세듯 센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신다는 것이다. 게달 지역의 드단과 데마 사람들이 피난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장 심판하시고 싶으시지만 참으시며 1년간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1년이 지나도 불쌍한 피난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게달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드단과 데마는 게달이라는 지역 안에 있는 도시들이다.

17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를 말한 것이다. 게달의 자손들 가운데서 활 쏘는 자손들이 얼마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물과 빵을 주지 않는 게달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셔서 거의 다 멸하시고 아주 적은 수만 남기신다는 것이다.

아라비아도 역시 바빌론과 동맹을 맺고 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악한 사람들이다. 내가 입을 것과 덮을 것만 있으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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