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5-10 청소년 시절 이집트에서부터 음란하게 창녀 짓을 하던 오홀라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뒤에도 앗시리아를 쫓아 다니며 그렇게 음란한 창녀 짓을 했다. 앗시리아는 오홀라의 자녀들을 잡아가고 오홀라를 벌거벗겨 전시하고 결국 칼로 찔러 죽였다.
이전 말씀에서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출애굽 이전 청소년기부터 음란하게 간음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오늘 말씀에는 북왕국으로 비유된 오홀라의 죄를 기소하고 판결을 내리시는 내용이다. 청소년기부터 그렇게 간음했는데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뒤에도 그렇게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5-9절은 오홀라의 간음 죄를 기소하는 내용이다. 5절은 오홀라가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에도 계속해서 창녀 짓을 했다는 것이다. 결혼 전 청소년기 부터 그렇게도 창녀 짓을 하더니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과 결혼한 후에도 역시 그렇게 계속 창녀 짓을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창녀 짓을 했다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은 계속해서 사모했다는 말이다. 사모했다는 말은 계속해서 타 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어쩔 줄 몰라 한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창녀 짓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더 불태우고 싶어 몸을 비비 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이다. 그 대상은 앗시리아 사람이다. 북왕국 예루살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도 그렇게 앗시리아와 간음을 했다는 것이다.
6절은 잘 생긴 청년으로 비유된 앗시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자색 옷은 왕족과 같이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입던 옷이다. 고관과 감독이라는 말에서 고관은 큰 나라의 왕이 정복한 작은 나라를 다스리도록 파견한 총독이나 왕이 파견한 외교사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감독이라는 말도 역시 총독을 뜻하는 말인데 ESV와 NIV와 NLT와 새번역은 군 지휘관이라고 번역했다. 당시의 총독은 한 지역을 다스리던 행정관이면서 동시에 군 작전을 지휘하는 사령관이기 때문이다.
또 준수한 청년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아주 잘 생긴 꽃미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번역이 매력 있는 젊은이 라고 한 것은 아주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말 타는 자들이라고 했다. 말을 타는 것 또한 높은 신분을 나타낸다. 요즘 말로 하면 젊은 나이에 각료급 고위 관료가 된 사람인 데다가 최고로 잘 생긴 매력적인 미남이고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다닌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렇게 최상급의 남자이다.
7절은 오홀라가 그들과 음행을 했다고 했는데 원어는 그녀가 자신들의 음란함을 그들에게 제공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과 눈이 맞아 간음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원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쫓아가서 자신의 음란함을 바쳤다는 뜻이다. 그들은 앗시리아 사람들 가운데서도 빼어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누구를 연애하든지 라는 말은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채우기 위해 쫓아가는 모습이다. 새번역은 누구에게 홀리든지 라고 번역했다. 오홀라는 그 모든 우상들로 말미암아 그 몸을 더럽혔다고 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있던 지도자들이 앗시리아를 섬기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이렇게 음란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8절은 오홀라가 청소년 시절 이집트에서 시작된 창녀 짓을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원어의 어순 그대로 이 부분을 앞에 두었는데 개역개정은 8절의 맨 뒤에 두어 중요한 초점이 흐려졌다. 그 때부터 시작된 창녀 짓이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 3절에서 말한 처녀의 꼭지를 손으로 만졌다는 말을 다시 반복한다. 거기에 8절에서는 한 마디 덧붙인 것이 그들의 음란함을 쏟아 부었다는 말이다.
이는 남자들이 오홀라에게 얼마나 많이 부어주었는지 갑자기 와디에 넘치는 물처럼 그렇게도 많이 쏟아 부어주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되기도 전에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쏟아 부어주는 것을 받았는데 아직도 앗시리아의 잘생긴 남자들을 그렇게 받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관심도 없는 남자에게 쫓아가서 자원해서 그렇게 받아주고 있다는 뜻이다.
9절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홀라를 오홀라와 성관계를 갖던 그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는 것이다. 곧 앗시리아 사람들의 손이고 그녀가 그렇게도 주체할 수 없던 욕구를 풀기 위해 쫓아갔던 그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고멜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아주던 호세아 선지자 같은 좋은 남편이 아니다. 그냥 즐기고 이용하고 팔아버릴 아주 나쁜 남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10절은 그들이 하체를 드러냈다고 했다. 오홀라는 그렇게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었는데도 그들은 실컷 즐긴 후 사람들 앞에 벌거벗겨 전시를 해 놓고 망신을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홀라의 아들과 딸들을 포로로 잡았다. 그 다음에는 벌거벗겨 전시해 놓은 오홀라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처형이 되었을 때 오홀라의 행위와 그 결말은 여인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끔찍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오홀라의 음행을 포르노그라피처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를 생생한 그림으로 경고하려는 것이다. 그렇게도 좋아하며 의지하던 앗시리아에 의해 벌거벗겨 전시되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벗겨진 채 칼에 찔려 죽는 장면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며 세상과 짝하여 살고 세상의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은 오늘 말씀에 나온 오홀라처럼 음란한 것이다. 그 결말은 오홀라와 같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 세상의 쾌락과 세상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은 잠시이고 결국 세상에 의해 그렇게 참혹하게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이집트에서부터 그렇게 음란하게 살던 우리를 아시고도 언약을 맺어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 주시고 삼아 주신 하나님보다 더 좋은 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우리를 이용하기만 하고 그 즐거움이 끝나면 우리를 죽일 뿐이다. 우리를 끝까지 참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오직 그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한결같은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만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