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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23:1-4

Dawn Word

에스겔 23:1-4

음란한 백성들을 한없이 참아주신 하나님

2019. 12. 23.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23장 강해 설교

에스겔 23:1-4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의지하고 있던 포로로 잡혀온 유다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에서 남왕국의 수도 예루살렘까지 모두 다 음란하게 세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과거 출애굽 이전 이집트에서 부터 에스겔의 시대까지 전 시대에 걸쳐 모두가 다 그렇게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정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재판관들과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다 타락한 그 온 땅에 불을 내려 완전히 태워 정결하게 하실 것이라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남왕국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음행하는 자매로 비유하여 책망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23:1-4절은 먼저 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2절도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는 말로 시작하며 새로운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는 뜻이다. 먼저 두 여인이 있었는데 한 어머니의 딸이라고 했다. 두 여인은 한 배에서 나온 딸들이고 이복 자매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3절은 그 두 자매가 이집트에서 행음했다고 했다. 행음했다는 말은 계속해서 창녀 짓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 이어서 그들은 어려서 부터 행음했다고 했다. 어려서 부터라는 말은 청소년기부터 라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십대 청소년기에 결혼을 했는데 약혼하기 전 처녀일적을 뜻하는 말이다. 이 두 여자들은 몸이 발달하기 시작한 13-14세 때부터 벌써 창녀 짓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두번째 나온 행음을 했다는 말은 완전히 창녀 짓을 했다는 뜻이기에 처녀로 지낼 어린 나이 때부터 그렇게 몸을 팔았다는 뜻이다.

유방이 눌렸다는 말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나타낸 말이다. 처녀의 가슴이라는 말은 처녀의 꼭지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처녀라는 말은 젊은 여인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성관계를 갖지 않은 증거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처녀의 꼭지라는 말은 젖꼭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녀라는 말이 여성의 생식기를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그 꼭지는 클리톨리스를 가리킬 수 있다. 따라서 이는 결혼하기 전부터 성관계를 가졌다는 말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더구나 어루만졌다는 말은 물건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손으로 만져서 물건을 만들어 낼 때 쓰는 말이다. 소나 양의 젖을 짤 때 손으로 만지고 누른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3절 뒷부분은 음란하게 창녀 짓을 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4절은 그 형의 이름은 오홀라요 그 아우는 오홀리바라고 했다. 오홀라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라고 했고 오홀리바는 남왕국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원어에서 오홀라 라는 단어의 글자의 수는 사마리아라는 단어와 똑같고 오홀리바 라는 단어의 글자 수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와 똑같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맞추어 만들어낸 이름이다(Block, 735).

오홀라는 "그녀 자신의 텐트" 라는 뜻이고 오홀리바는 "그녀 안에 있는 내 텐트" 라는 뜻이다. 오홀라는 사마리아에 있는 여로보암 성전을 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상의 산당을 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홀리바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뜻할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신부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창녀 고멜을 아내로 삼은 호세아가 그 전형이다. 이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다. 3절에서 결혼 전부터 둘 다 창녀 짓을 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의 신부들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절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부터 거룩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집트에서부터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신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아 기르도록 하셨다는 뜻이다.

에스겔 당시 포로로 잡혀간 유다 사람들은 이집트가 자신들을 바빌로니아로부터 구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유다가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 군대의 힘으로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켜 줄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저들의 태도가 간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간음은 출애굽 이전 이집트에서부터 그랬다 라는 것이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집트에서 섬기던 우상들을 섬기며 계속 간음을 했던 것이다. 출애굽 이전 조상들 때부터 그렇게 음란하게 세상을 섬겼는데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 당시도 그렇게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끊임없이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중 일부 거룩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 남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이어온 것이다. 종교개혁도 세상과 짝하여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던 카톨릭 교회에 반기를 들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백년이 흐른 오늘날 그렇게 종교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 교회들이 카톨릭처럼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역시 똑 같은 모습으로 세상과 짝하여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큰 교회들만 그렇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교회 크기와 상관없이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말로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서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살아가는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가득하다. 그러한 세속적인 성도들을 비판하는 거룩한 자들 역시 자신들도 역시 교회 안에서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 없음을 비판하여 깎아 내리고 자신들을 스스로 높이되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이는 사람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들을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파 사람들도 스스로 자신들 만이 최고로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오늘날 남을 비판하는 자들도 역시 그러한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것이다.

내가 바로 오홀라이고 내가 바로 오홀리바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음란하게 세상과 짝하여 살던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 주신 것이다. 아직도 그렇게 음란하게 세상과 짝하여 살고 있는 우리를 참아 주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였고 현재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다면 말없이 종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섬기면서 짓밟히고 무시당하겠지만 그래도 말없이 섬기며 예수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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