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27-33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때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 소리에 장단을 맟춰 찬양하며 기뻐할 것이다.
하: 완전히 태워버리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로 피하자. 하나님의 품 안에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은 믿는 자는 세상에서 눌리고 밟힐 것이지만 주께서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날에 싸매주실 것이라 했다. 이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앗시리아를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27절은 "주님의 이름이 먼 곳에서도 보인다" 이다. "권세와 영광" 이라는 말은 새번역에서 주님의 이름이 곧 권세와 영광이라고 설명을 삽입한 것이다. 이사야는 주님의 이름이 멀리 앗시리아에도 계신 것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앗시리아까지는 아니겠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멀리 동쪽에서 폭풍이 일어나고 폭풍에 밀려오는 구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먼저 보이는 것은 진노의 불꽃이다. 점점 더 다가가니 빽빽한 연기가 보인다. 빽빽한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정말 가까이 와서 보니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그 혀는 완전히 다 태워버리는 불과 같다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다. 입술과 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28절도 멀리서 몰려오는 폭풍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의 숨은 범람하는 강물 곧 목까지 차는 물과 같다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와디에 몰려오는 강물의 모습이다. 순식간에 강물이 몰려와서 목까지 차고 모든 것을 다 쓸고 가 버린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목까지 차오르는 것은 임박한 죽음을 상징한다.
파멸하는 키로 민족들을 까부르시며 라고 했는데 이는 넘치는 강물이 좋은 곡식과 나쁜 곡식을 키로 까부르듯 골라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겐 멸망의 심판이다. 미혹하게 하는 재갈을 백성들의 입에 물리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재갈로 묶어 죽음으로 이끌고 간다는 뜻이다.
29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는 축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에서 나온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한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자들만이 안전한 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지켜보며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절기를 지키는 밤처럼 노래를 부르며 피리를 불며 거룩한 산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기쁠 것이라 했다. 이는 구원의 감격에서 오는 기쁨이다.
30절은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 시온 산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구경하는 장면이다. 한글 성경들은 원어와는 순서가 바뀌어 있어 생생한 모습이 사라졌다. 먼저 주님께서는 장엄한 음성을 듣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인 것이다. 그 다음은 내리치시는 팔이다. 그 팔은 이제 선포된 심판에 의해서 형을 집행하시는 맹렬한 진노의 팔이다. 또 피어오르는 구름과 함께 나오는 불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다 태워버린 뒤 남은 것은 폭풍으로 날려버리시고 그 타고 난 흔적을 돌덩이 우박으로 완벽하게 다 덮어버리시는 것이다.
31절은 앗시리아 사람들은 주님의 목소리에 박살이 난다는 것이다. 당시 앗시리아는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온 세상을 정복했고 앗시리아의 왕이 온 세상의 왕으로 통치의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온 세상의 왕은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들고 계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의 지팡이로 앗시리아를 때리실 때 그렇게 완전히 박살이 난다는 뜻이다. 이는 앗시리아만 그렇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 대신 세상에서 왕노릇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치셔서 완전히 박살을 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상 권세를 의지하면 함께 망한다는 뜻이다.
32절은 주님께서 앗시리아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소리가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는 흥겨운 리듬이 된다는 것이다. 그 두들겨 패는 소리에 맞춰 소고를 치고 하프를 연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통치의 지팡이를 휘두르시며 앗시리아를 멸하실 때 울리는 그 심판의 타작마당 소리가 흥에 겨워 그 소리에 맞춰 주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3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왜 그렇게 기뻐 찬양을 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래전에 불태울 곳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그 왕을 태워죽일 곳을 마련하셨다는 것이다. 그 불구덩이는 깊고 넓으며 불과 땔감이 넉넉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태워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루살렘 아래에 있던 힌놈의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제사를 드리는 모습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면 유황의 강물처럼 불이 흘러 넘쳐서 그것들을 완전히 다 살라 버리실 것이다.
앗시리아는 세상의 강한 나라나 강한 권세를 상징한다.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페르샤에 이어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가 세상을 정복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군사적으로만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의 신들과 문화 예술로 당시 세계를 완전히 정복했다. 로마는 알렉산더의 제국을 인수해서 그리스 문명의 꽃을 피우게 한 것이다. 그리스 문명은 수많은 신들 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실은 신을 빙자한 인간 중심이다. 르네상스는 바로 수많은 신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그리스-로마 문명을 되살리려던 운동인데 그 수많은 신들은 곧 인간들이다. 하나님 대신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6-19세기 유럽의 기독교 안에도 이러한 인본주의 운동이 혼합되어 있었다. 하나님을 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도 부귀영화를 내리도록 축복해 주신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가르치자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가서 약한 나라들을 착취했고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착취해 돌아오는 배들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했다. 그들은 그렇게 부자가 되어 구원받은 증거를 얻으려 했다. 이러한 인본주의 운동과 혼합된 기독교는 20세기 캘리포니아 학파들을 중심의 번영신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 잘 믿으면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본주의 운동은 좋은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이어져온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의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인본주의 운동이 극단적 여권운동과 낙태 동성애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다 누리며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는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로 대표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나 이집트나 앗시리아나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두들겨 패시고 영원한 심판의 불로 태워버리신다고. 살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장차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