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9-26 믿는 자는 세상에서 환난과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주께서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바른 길을 가게 하실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악인들은 심판하시고 의인들은 그 상처를 싸매 주실 것이다.
하: 인도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
나: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며 환난과 고난을 견디어 내며 말씀을 따라 바른 길로 가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피하는 자들은 모두 망할 것이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자들만 영원히 복을 받을 것이라 했다. 이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는지를 설명한 내용이 이어진다.
19절은 이제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아 라고 부르는 말로 시작한다. 이집트를 의지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가서 모두 망했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의 시온 백성은 하나님 품에서 안식하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다. 이제 다시는 울 일이 없을 것이라 했다. 네가 살려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틀림없이 은혜를 베푸실 것이니 들으시는대로 응답하실 것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며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완전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오신 뒤에야 이루어졌다.
20절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신다는 말은 빵과 물을 주신다는 것이 초점이 아니다. 환난이라는 빵을 주시고 고난이라는 물도 주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품으로 피했는데도 환난을 밥먹듯이 당하고 고난도 물마시듯 겪는다는 뜻이다. 환난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본래 좁은 곳에 끼여있다는 뜻이다. 시편에서는 4번은 환난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7번은 대적이라는 말로 쓰였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환난이 옆에서 눌리는 것이라면 고난은 위에서 눌리는 것이다. 환난이 대적들에게 공격을 받는 것이라면 고난은 이미 포로가 되어 매를 맞으며 강제노동을 하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피하는데도 이러한 대적들의 공격과 억압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계속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너의 스승들을 숨기지 않으실 것이라 했다. 스승들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숨지 않으시고 항상 환난과 고난 가운데 있는 남은 자들에게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드러내시는가? 21절에 보면 "소리가 너의 귀에 들릴 것이다" 라고 했는데 원어는 말씀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네 귀들이 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씀을 들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승들이란 하나님 즉 하나님의 말씀들이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우리 등 뒤에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하시나? 네가 왼쪽이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 하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소나 말을 끌고 가려면 고삐를 매고 끈으로 묶어 끌고 가면서 매로 때려가면서 억지로 끌고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뒤에서 따라가시면서 이리로 가야 한다 저리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나 말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억지로 끌고 가지만 사람은 말을 알아 듣기에 말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만약 나의 등 뒤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제 멋대로 간다면 소나 말처럼 미련한 자들인 것이다.
뒤에서 말씀하신다는 말은 마치 아들과 딸이 앞에서 운전하며 갈 때에 뒷자리에 앉아서 말하는 아버지와 같다. 똑바른 길을 갈 때는 아무 말도 안하지만 갈림길이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왼쪽으로 가라 오른 쪽으로 가라 하고 알려주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 품 안에서 사는 우리도 역시 환난과 고난을 밥먹듯 물마시듯 당하지만 우리 등 뒤에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바른 길로 가도록 길을 안내하신다는 것이다.
22절은 21절의 바른 길을 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말이다. 손으로 나무를 깎아내고 은을 칠하여 만든 우상이나녹인 쇠를 부어 만들고 금을 입힌 우상들을 내던지며 없어지라 소리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우상들은 이리 가라 저리가라 말해주지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상들은 금과 은으로 옷입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앞에서 유혹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의 화려함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마치 풀꽃 왕관을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내버리라 하시니 그 음성을 듣고 내던지는 것이다.
23절은 네가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주님께서 비를 내려서 실하고 기름진 곡식을 주신다 했다. 고린도전서 3:6절에서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라고 했다. 우리가 우리 등 뒤에서 들려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면서 그 말씀을 우리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말씀을 심는 것이다. 그러면 환난과 고난을 늘 겪겠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다. 또 그 때에 너의 가축은 넓게 트인 목장에서 풀을 뜯을 것이라 했다. 우리에게 풍성한 결실을 주시고 우리의 가축들에게는 푸른 초장을 주신다는 것이다. 모두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핵심은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다.
24절은 밭가는 소와 나귀도 아무것이나 먹지 않고 키와 부삽으로 까부르고 간을 맞춘 사료를 먹을 것이다 라고 했다. 보통 소나 나귀는 보릿짚이나 밀짚이나 마른 풀을 먹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나 나귀도 키와 부삽으로 그런 잡티는 다 날려 보내고 알곡만 골라 주고 거기에 소금으로 간을 맞춰 먹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꿈같은 일이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든 사람들 조차도 풍성히 먹지 못했기에 가축들에게 이렇게 먹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 풍성히 먹게 하신다는 뜻이다.
25절은 원어에서 "높은 산과 솟은 언덕마다 개울과 시냇물이 흐른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나오는 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축복을 상징한다. 본래 이스라엘의 높은 산과 언덕들은 메마른 황무지이다. 마치 미국의 유타나 네바다의 황량한 바위산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산들과 언덕들에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면 "큰 살륙의 날" 이다. 그 날이 오면 세상을 의지하던 교만한 자들을 모두 멸하시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 날에는 성의 탑들이 무너진다 했다. 그 날에는 그들이 의지하던 교만의 근원들을 무너뜨리신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26절도 "달이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진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남은 자들에게 나타나신다는 뜻이다.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매 맞아 생긴 그들의 상처를 고치신다는 것이다.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순서를 바꾸어 번역했는데 그렇게 하면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극적인 장면이 사라진다. 25절과 26절은 정확히 대조가 되는 댓구이다. 25절에서는 메마른 산과 언덕에 갑자기 물이 시냇물이 흐르게 된다. 바로 그 날에 악한 자들은 모두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26절은 갑자기 달이 해처럼 밝아지고 해는 일곱배나 밝아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 날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치료하신다는 것이다. 순서를 바꾸면 이러한 극적인 장면이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품 안에 거한다 해도 항상 기쁨과 평화만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자들도 환난을 빵먹듯 당하고 고난을 물마시듯 겪는다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우리 등 뒤에 항상 계시며 길을 안내하시기에 우리는 주님 오시는 마지막 날 그 영광의 날에 대적들은 모두 멸하시고 우리가 대적들에게 받은 상처는 우리 주님께서 싸매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이 인도하는대로 따라가야 한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이제 내려놓자.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내 감정대로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우리 상처를 싸매 주시고 눈물 닦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