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21:8-17

Dawn Word

에스겔 21:8-17

그 백성을 칼로 멸하시는 하나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 에스겔 47장

2019. 12. 14.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21장 강해 설교

에스겔 21:8-17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칼로 쳐서 모두 멸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것을 에스겔에게 비유로 말하게 하시고 분명한 말로 전하게 하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알게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을 칼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게 하신다.

8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했다며 새로운 예언을 시작한다. 이어서 9절 앞부분도 "사람의 아들아 너는 예언하여 말하길" 이라는 새로운 예언을 이어간다. 새로운 예언은 9b-11절에 나오는 칼의 노래이다. 이 칼은 분명히 21:4-5절에 나온 여호와의 칼이다. 언약을 맺을 때 언약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되도 좋다 라고 맹세하며 칼로 쪼개 놓은 동물의 시체 사이를 지나갔기 때문에 칼이 등장한 것이다. 이제 그 언약을 따라 그 백성들을 뽑으신 진노의 칼로 쪼개시겠다는 것이다.

9절 뒷부분은 "칼이여! 칼이여!" 라고 두 번 부르며 칼이 날카롭게 날이 섰고 빛이 난다고 했다. Block은 날이 섰다는 말은 그 칼로 죽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고 칼이 빛난다는 말이 사용할 준비가 끝났다 뜻이라고 했다(Block, 677). Dyer도 역시 칼이 날이 섰고 빛이 난다는 말이 군인들이 전투에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를 나타낸다고 했다(Dyer, 1267). Fausset은 칼이 빛난다는 말이 적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이라 해석했다(Fausset, 280).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높이 들었을 때 햇빛을 받아 번쩍이면 그 빛은 적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일 것이다.

10절을 보면 이 두 단어의 의미가 설명이 되어 있다. 먼저 날카로움은 죽이기 위한 것이고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라고 했다. 번개의 효과는 실제 죽이는 것보다는 공포감을 주는 것이니 Fausset이 옳게 설명한 것이다. 개역개정은 이어지는 말을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 도다" 라고 번역했다. 규라는 말은 왕의 통치 지팡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통치 지팡이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서로 다르다. 먼저 이 통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징계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다. 새번역은 NRSV와 같이 이 통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징계를 뜻한다고 보고 "내 백성이 모든 경고와 심판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느냐?" 라고 번역했다. Revised English Bible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 Look, the rod is brandished, my son, to defy all wooden idols!" 이라고 번역했다. 역시 통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징계를 뜻한다고 보면서 나무들을 백성들이라고 보지 않고 우상들로 본 것이다. Dyer도 잠언의 구절들을(10:13; 13:24; 23:13)근거로 통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징계를 뜻한다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러한 훈계를 업신여겼기에 이제 칼을 쓰시는 것이라고 했다(Dyer, 1267).

또 다른 해석은 아들이 유다를 뜻한다고 보고 통치 지팡이는 다윗의 왕권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다윗 왕권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확신은 헛된 것이라고 에스겔이 전한다는 것이다(Block, 678; Fausset, 280). NASB와 NIV는 그러한 확신이 헛된 것이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NIV는 "Shall we rejoice the scepter of my royal son? The sword despises every such stick" 이라고 번역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그런 막대기를 헛되게 한다는 의미를 살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은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은 언약에 따라 절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다윗의 왕권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확신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에스겔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제 11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칼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는 장면이다. 그 칼이 광이 나게 갈도록 넘겨주신 것은 손에 잡아서 쓸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칼이 날카롭게 갈고 빛이 나게 하신 것은 살륙자의 손에 넘겨주시려는 것이다. 누구에게 넘겨 주시는지는 아직 나와있지는 않다.

12절은 또 다시 에스겔을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며 울부짖고 통곡을 하라고 하신다. 역시 울부짖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말로 전하게 하신 뒤에 몸으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고관들에게 칼이 임한다는 것이다. 고관이라는 말을 새번역은 지도자라고 번역했는데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왕자들이란 뜻이다. 유다의 왕족들이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 지도자들과 그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치라는 것이다. 넓적다리를 치는 것은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넓적다리를 치는 것 역시 백성들에게 말씀을 몸으로 보여주라는 뜻이다.

13절은 앞에서 말한 칼을 시험해 보시겠다는 것이다.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진다는 말은 다윗의 왕권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고 에스겔의 말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통치 지팡이가 없어지면 어찌하겠느냐 는 것이다. 새번역은 그 의미를 살려서 "이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제 유다의 왕권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라는 말로 13절을 끝맺은 것은 분명히 이루신다는 뜻이다.

14절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며 새로운 명령을 내리신다. 역시 말씀을 몸으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먼저 손뼉을 치라는 것이다. 이는 22절에 17절에 비추어 볼 때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 이어서 칼로 두 세번 내리치는 동작을 하라는 것이다. 두 세번 치라고 했기에 하나님의 분노를 확증해 보이시는 것이다. 완전히 다 멸하시겠다는 것이다. 칼이 사람들을 둘러싸고 대학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15절은 심장이 녹고 많은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것이다. 14절 뒷부분에 나온 대로 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또 성문은 안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적이 쳐들어 올 때도 성문이 닫히면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문마다 번쩍이는 칼을 세워놓았기에 성문은 더 이상 안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또 성문은 재판하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성문마다 번쩍이는 칼들이 있기에 이제 성문은 재판정이 아니라 처형장이다. 어딜 가도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도망할 곳도 없는 것이다. 그 칼들은 죽이려고 날카롭게 갈아 놓은 칼들이라는 것이다. 16절은 칼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오른 쪽을 치고 또 왼쪽을 치라는 것이다. 날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칼의 얼굴이 향한 쪽을 모두 치라는 것이다.

17절은 여호와께서도 분노의 손뼉을 치신다는 것이다. 14절에서 에스겔에게 손뼉치라고 한 말이 여호와의 분노를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칼은 하나님의 분노를 다 풀기 위한 도구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 백성들을 다 멸하시도록 칼로 치게 하시는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라는 말로 이 부분을 맺으며 분명히 이루신다는 것을 확증하신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으시는 분이시다. 다른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에스겔을 통해서도 계속해서 예언하게 하시고 회개하길 기다리셨다. 이제 그 인내의 시간이 다 지나갔으니 이제 모두 죽이시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회개하고 돌아서길 기다리신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탐욕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간다면 모두 다 멸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말로만 믿는다고 떠들지 말자. 믿음은 말로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내 모든 탐욕을 버리고 우리 주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에스겔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