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45-21:7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게 하시고 분명한 말로 전하게 하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알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을 다 제거하시고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사람들을 모아 언약을 따라 정결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드실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향기로운 제물이 될 사람들을 모아 인도할 땅인 예루살렘을 완전히 불로 태워 정결하게 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45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또 에스겔에게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예언이 도착했다는 뜻이다. 46절은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시며 얼굴을 남쪽 땅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그 남쪽을 향하여 대적하여 외치라는 것이다. 남쪽을 향해 심판의 말씀을 외치라는 것이다. 또 네게브의 숲을 대적하여 예언하라고 했다. 문제는 네게브는 유다 남쪽의 사막이고 숲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Matthews는 네게브가 지방이라기 보다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쓴 것이라고 말하며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했다(Matthews, Ezek 20:46). 또 Block은 네게브 숲이란 예루살렘의 별명이라고 했다(Block, 663). Cooper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주석가들도 네게브 숲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가리킨다고 말한다(Cooper, 209; Dyer 1267; McGregor, 729).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하여 예언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47절에서 네게브의 숲에 말하라는 것은 분명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말하라는 것이다. 숲 속에 불을 질러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들을 태울 것이라는 것이다. 산불은 모든 것을 다 태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의 부정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없애시고 정결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타오르는 불로 인해 남쪽에서 북쪽까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그 불에 그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 불이 얼마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인지를 나타낸 말이다. 48절을 보면 그렇게 맹렬한 불길이 꺼지지 않는다고 했다. 혈기 있는 자들이란 육체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불을 여호와께서 붙이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붙이신 불이기에 절대로 꺼지지 않는 것이다.
49절에서 이러한 예언을 전하는 에스겔을 비유로 말하는 자라고 조롱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에스겔의 말을 진지하게 받지 않고 거부한다는 뜻이다(Block, 66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스겔의 말을 받아들여 분명한 말로 전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 21장에 나온다. 21:1절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새로운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2절도 20:46절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번에는 얼굴을 예루살렘을 향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앞에서 네게브 숲을 향하라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 성전을 향해 소리를 외치고 이스라엘 땅에 대적하여 예언하라는 것이다.
3절은 앞에서 산불로 비유하신 말씀을 칼집에서 칼을 뽑아 너희 가운데 있는 의인과 악인들을 다 쳐 죽이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의인과 악인을 다 쳐 죽인다는 말이 문제가 된다. 칠십인역 구약성서는 그렇기 때문에 의인과 악인이라는 말을 불의한 자와 불법자들이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했다. 유대인들은 이 의인들의 의가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시켰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양극단을 표현한 말로 설명한다(Block, 669). 의인과 악인이라는 말은 20:48절과 21:5절의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쓴 것이라고 본인도 생각한다. 칼은 전쟁을 뜻하는 것이고 전쟁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다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의인이나 악인이나 라는 말의 초점은 모두 다 라는 데 있는 것이다. 본인은 20:47절의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라는 표현을 명백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본다. 산불이 나면 푸른 나무나 마른나무 가리지 않고 다 태워버리는 것처럼 전쟁이 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되는 것이다.
4절의 남쪽과 북쪽이라는 표현도 의인과 악인이라는 말과 같이 양극단을 설명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은 모든 사람들을 다 죽게 하시는 것이고 남쪽에서 북쪽까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다 죽이신다는 것이다. 당시 산불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게 두는 방법 말고는 아무런 방법도 없는 것이다. 전쟁도 불과 같이 무차별 살상을 하는 것이다. 5절은 그렇게 심판하실 때 에야 비로소 모든 육체를 가진 사람들은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칼이 다시 칼집에 꽂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정하시면 끝까지 거두지 않으시는 것이다.
6절에서 하나님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시며 탄식을 하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면서 슬피 탄식하라고 하신다. 이는 실제로 그렇게 슬퍼하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에스겔이 비유의 말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말로 전했는데도 충격을 받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기에 이번에는 연극을 하듯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는 12장에서 짐을 싸서 벽에 뚫은 구멍으로 짐을 내다 놓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러한 에스겔의 슬픔이 보여주는 설교라는 것이 7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사람들이 에스겔에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답하라는 것이다. 그 소문은 각 사람의 심장이 녹고 각 사람의 손은 약하여지며 각 사람의 영은 쇠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무릎들은 물과 같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Block은 이 소문에 대해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향해 침공해 오는 것이라는 견해를 거부하면서 앞서 에스겔이 전한 심판의 말씀들이라는 해석을 선호한다고 했다(Block, 671).
사람들이 에스겔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은 안전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시게 한 것은 이제라도 거짓 선지자들이 전한 거짓된 확신에서 빠져나와 에스겔의 말을 듣고 진정한 회개를 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7절은 "보라!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말로 끝이 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말도 역시 반드시 이루신다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산불에 불타듯 완전히 멸망할 것이니 회개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결하게 태우셔서 그 곳에 살아남은 거룩한 자들을 다시 심으시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에스겔은 세가지로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다. 먼저 산불의 비유로 전했고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전했다. 그래도 듣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애통해 하는 연극을 하여 보여주고 그 의미를 전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세가지 방법으로 전했는데도 듣지 않고 비웃는 자들은 완전히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경고는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못 들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 들었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 못 보았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눈으로 확인하여도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