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39-4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을 다 제거하시고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사람들을 모아 언약을 따라 정결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드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땅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불러내셔서 하나 하나 검사하셔서 정결한 자들만 골라 내시고 나머지는 모두 멸하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은 가서 우상을 섬기고 다시는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시며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의 예배만 받으시겠다고 하신다.
39절은 "이스라엘 족속아" 라고 부르며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한다. 에스겔 앞에는 포로로 잡혀온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이 앉아 있지만 이제 전하는 말씀은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은 지금처럼 계속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테면 섬기라는 것이다. 개역개정이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이라는 말을 새번역과 NASB와 NIV는 지금은 내 말을 듣지 않으나 나중에는 듣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이어지는 "너희의 온갖 예물과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라는 말이 새번역처럼 "너희의 온갖 예물과 우상 숭배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ESV는 개역개정처럼 "you shall no more profane…" 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NASB는 "you will profane no longer..." 번역했다.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보면 ESV나 개역개정은 잘못 번역한 것이다. 바로 앞부분인 37-38절은 하나 하나 검사해서 다 없애 버리신다고 했기 때문에 "우상숭배 할 테면 해보라! 앞으로는 더 이상 못하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인 것이다. Allen도 풍자적이고 위협적인 언어로 회개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했다(Allen, 62). Barry와 Block과 Dyer역시 "더 이상 못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해석했다(Barry, Ezek 20:39; Block, 654; Dyer, 1266). 그러므로 새번역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은 앞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경고이다. 그런 자들은 완전히 다 제거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40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높은 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높은 산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그렇게 양다리 걸친 자들은 앞으로는 다 제거하셔서 다시는 그렇게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어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다" 라는 말로 쐐기를 박는다. 번역하며 어순이 바뀌어 이런 강조점이 약화되었다.
그렇게 정결한 사람들만 남기실 것이기에 이어서 이스라엘 온 족속, 그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 것이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이다. 양다리 걸친 음란한 여자같은 자들은 모두 다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너희의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에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다리 걸친 자들이 드리는 이러한 예물들은 가증히 여기며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41절에서 여러 나라 가운데서 나오게 하고 흩어진 여려 민족 가운데서 모아 낼 때 라는 말은 양다리는 다 제거하고 진정으로 하나님만 예배하는 자들을 모아 올 때 그 모아오는 사람들 자체를 아름다운 향기로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을 모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최고의 향기로운 예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방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이다.
42-44절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자들의 반응이다. 42절은 이런 향기로운 예물이 되는 자들을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희는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번째 반응은 여호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반응은 43절에 나오는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행해온 길들과 자신을 더럽힌 모든 행위들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회개하기 전에 자신들이 행한 모든 역겨운 죄악들을 기억해 내고는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죄들을 다시는 행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세번째 반응은 44절에 나오는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반응에서 여호와를 알게 되는 것은 인도하신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반응은 악한 죄인들을 지은 죄 대로 벌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셔서 이렇게 회복시키신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을 통해서 여호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회복된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거룩해서가 아니다.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 편에서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고 기다리실 때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만 예배하는 자들을 기뻐 받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거룩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죄인된 우리를 한없이 참아 주시며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려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은혜의 때이다. 지금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때는 아니라고 본다. 특별히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 안에는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사람들과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과 완전히 세상만 의지하고 살면서 교회는 형식적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이 모두 섞여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온전하지 못한 나머지는 다 몰아내고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때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가 양다리 걸친 사람들과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갈 때인 것이다. 온전히 정결한 믿음의 공동체는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타임아웃을 외치실 때까지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 앞으로 이끌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