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32-38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땅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불러내셔서 하나 하나 검사하셔서 정결한 자들만 골라내시고 나머지는 모두 멸하시겠다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반역하던 이스라엘을 끝까지 참으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온 세대들은 에스겔의 시대까지 계속해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 사람들의 반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
32절은 원어에서 "너희가 마음에 품은 뜻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내용은 다른 이방 나라들과 나라들의 족속들처럼 나무와 돌을 경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상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나무와 돌이라고 했다. 이러한 우상들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이고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상들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로서는 해서는 안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은 꿈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33절에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라고 했다. 강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다스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손과 뻗은 팔로 그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 그 꿈은 결코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들에게 포로로 끌려간 상태에서 꾸는 꿈이다. 자신들도 이방 사람들의 신을 섬기며 그들처럼 살자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34절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내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징계하시기 위해 열국 중에 흩어 놓으셨는데 그곳에서 우상들을 섬기며 살자고 하니 다시 끌어 내신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으시겠다는 것이다. 포로로 잡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능한 손과 편 팔로 끌어내시는 것은 좋은 일처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끌어내시는 것은 멸망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어디로 끌어내셔서 멸망시키시려는 것인가? 35절에 보면 광야로 끌어내신다고 했다. 거기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법정에 그 백성들을 세우고 그들을 대면하여 보시면서 그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심판하는가 하면 36절에 보면 이집트의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했던 것처럼 하신다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를 떠돌다가 다 광야에서 죽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37절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며 라고 했다. 이 은유는 목자가 양들을 하나 하나 검사하며 세는 그림이다(Dyer, 1265; Fausset, 276).
하나 하나 다 검사하여 하나님의 양인 것만 골라 내시겠다는 뜻이다. 언약의 줄로 맨다는 것은 그 중에 하나님의 양들만 골라내어 언약의 관계를 맺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 죽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양들은 골라내서 살리시고 나머지는 다 죽게 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수아와 갈렘만 살고 다 죽은 것처럼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38절은 너희 중에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들을 다 깨끗이 없애 버리신다는 것이다. 반역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 직접적으로 공격하며 싸운다는 뜻이다. 범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대항하여 고의적으로 어기며 하나님과 간접적으로 반항하여 싸운다는 뜻이다. 그런 자들은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듯 없앤다는 것이다. 부정한 것을 제하여 버리듯 하신다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정한 것은 조금이라도 남으면 여전히 부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역시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너무 하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해도 너무 한다고 하실 것이다. 그렇게 참아 주시고 계속 인도하시는 데도 끊임없이 우상들을 숭배하며 하나님께 반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조금이라도 남으면 전체가 부정한 법이다.
한번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야외에서 상을 차려 놓고 밥을 먹는데 지나가던 새가 똥을 밥에 떨어뜨리고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새똥이 묻은 부분을 다 걷어냈는데 그 중에 아주 조금이 남았다면 그 밥은 정결한 것인가? 절대 아니다. 이 때 새 똥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밥은 정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 쉬운 방법은 다 쏟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여 하나씩 다 검사하신다는 것이다. 밥알 하나 하나를 돋보기로 보시면서 정결한 것만 골라 내시겠다는 것이다. 첫번째 출애굽 때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남았다. 새로운 출애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 멸망하고 그 중에 극소수만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결한 남은 소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서 정결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 마음에 다른 우상들을 두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세상 부귀영화를 다 차지하고 누리며 살자고 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이다. 하나님 한분으로 족하다며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다른 것은 다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정결한 남은자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