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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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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에스겔 20:27-31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끊임없이 우상숭배하던 이스라엘 자손들

2019. 12. 9.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20장 강해 설교

에스겔 20:27-31 하나님께서는 반역하던 이스라엘을 끝까지 참으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온 세대들은 에스겔의 시대까지 계속해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참아 주시며 광야 2세대들에게 율례와 규례와 안식일을 주셨고 조상들의 방식을 따라 지키지 말라고 하셨건만 그들 역시 조상들을 따라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세대들의 우상숭배를 말하고 있다.

히브리어의 27절은 "그러므로 말하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나온 대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애굽 땅에서부터 광야 1세대와 2세대를 거쳐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했으므로 라는 말하라는 뜻이다. 머나먼 조상들이 우상숭배를 한 것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점은 맨 처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에 있다. 이는 에스겔의 시대 사람들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패역한 족속들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너희 조상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범죄하여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28절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반역하는 이스라엘 족속을 인내하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 때문에 그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높은 언덕과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또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며 부어드리는 제물도 바쳤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를 드렸어야 옳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반역하던 자신들을 용서하시고 그 땅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끊임없이 음란하게 우상들을 섬겼던 것이다.

29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찾아 다니는 그 산당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며 꾸짖으셨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책망하는 투로 물으신 것이다. 그곳을 오늘날까지 바마라고 부른다 했다. 바마란 높은 곳이란 뜻이다. 에스겔 시대까지 바마라고 부른다는 것은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족속들 역시 포로로 잡혀 오기 직전까지 바마에서 우상숭배를 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족속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 역시 우상숭배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우상숭배 했다고 조상들의 죄의 역사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30절은 이제 "그러므로" 라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조상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라는 뜻이다. 이제 에스겔 앞에 있던 포로로 잡혀온 족속들의 죄를 고발할 차례이다. 조상들의 죄가 자손들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앞에서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에스겔 앞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 역시 조상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역겨운 우상들을 따라 다니며 몸을 파는 창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31절은 어떻게 우상들과 행음하는 지를 설명한 것이다. 온갖 제물들을 우상들에게 바치고 아들들을 화제로 삼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너희 자신들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묻느냐고 반문하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모든 말씀들은 14:1절에 나온 에스겔에게 와서 하나님의 뜻을 묻던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로 비유된다. 하나님과 혼인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남편만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정결한 여인처럼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며 하나님과 늘 함께 동행하여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부는 본래 창녀촌에 팔려온 성 노예였다. 매를 맞아가며 몸을 팔고 있었다. 그런 여인을 하나님께서 구해 주셔서 정결하다 하시고 아내를 삼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구해주신 그 날부터 딴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며 지낸다. 그런 여인을 계속 참아주며 약속의 땅까지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음행이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쁜 족속들이라고 욕하겠는가?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 역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오늘날까지 그러한 죄는 지속된다. 세상 탐욕을 따라 세상을 음란하게 섬기면서도 필요한 때 점집을 찿듯 하나님을 찾으며 눈물로 기도하고 불안한 앞길을 묻는다. 어떤 이들은 우리 시대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며 신랄하게 비판을 하지만 결국 그러한 사람들 역시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비판하고 있다면 자신이 오늘 말씀에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음란하게 세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비추어 봐야 한다. 문제는 믿음이 없는 초신자들이나 불신자들이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 신앙의 전통 있는 가문을 자랑하고 본인이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이 비판하는 비판은 대부분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며 남의 눈의 티끌만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그 때부터 계속 우상숭배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죄가 없다던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 지도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님과 다투던 외식하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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