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11-2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략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던 시드기야의 계획을 무효가 되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유다를 연단하시려고 바빌로니아를 들어서 치셨는데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로니아에 대해 반역해서 완전히 뽑히게 되었다는 것을 독수리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실제 이루어진 일로 설명한 것이다.
이 말씀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에게 준 말씀이다. 시드기야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되찾으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포로로 잡혀온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소망을 산산이 부숴뜨린다.
1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말로 시작한다. 비유의 해설도 역시 에스겔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뜻이다. 12절은 반역하는 족속에게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라고 물으라는 것이다. 에스겔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온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들을 바빌로니아로 끌어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했다. 이는 17:2-4절에서 비유로 말한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여호야긴과 그 방백들을 잡아간 사실을 말한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과 그 방백들을 잡아다가 큰 물인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옥토에 옮겨 심었고 그들에게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대해준 것이다.
13절은 느부갓네살이 그 왕족 중 하나인 시드기야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고 언약을 맺고 맹세하게 했다는 것이다. 언약을 맺었다는 말은 느부갓네살과 시드기야 사이에 맺은 언약 전체를 말한다. 반면에 맹세를 하게 했다는 말은 그 언약 중 마지막 부분에서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언약은 상호간에 주고 받는 것이다.
그렇게 느부갓네살에게 충성한다면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와 그 나라의 안전을 책임져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 땅의 능한 자들을 끌어간 것은 유다가 배반하지 못하고 다시는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 땅의 유능한 자들을 잡아간 것이다. Block은 잡혀간 능한 자들을 왕의 방백들인 정치적 지도자들과 바빌로니아 경제에 도움을 줄 기술자들로 구분했다(Block, 543). 유다를 이끌어갈 두뇌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손과 발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간 것이다.
14절은 이렇게 한 목적이 스스로 독립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말한다. 두뇌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 갔고 그들의 명령에 따라 일할 사람들도 다 잡아갔기 때문이다. 이제 느부갓네살과 맺은 언약을 지켜야만 유다가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5절은 그런데 시드기야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고 바빌로니아 왕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16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하나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빌로니아 왕과 맺은 언약을 깬 왕은 바빌로니아에서 죽을 것이고 절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약을 어기면 언약을 맺을 때 쪼갠 짐승처럼 반으로 쪼개는 것이다. 그런데 열왕기하 25:7절에 보면 바빌로니아 왕은 자비를 베풀어서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는 것으로 대신했다.
17절은 대적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토성을 쌓으려고 할 때 이집트의 바로가 그 큰 군대와 군사력으로도 시드기야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18절은 시드기야가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깨고 이 모든 일을 했으니 절대로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죽음이라는 말이 없다. 시드기야는 절대로 탈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9절은 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라며 하나님께서 삶을 두고 맹세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는 바빌로니아의 왕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그 벌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제 시드기야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깬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언약은 앞에서 말한 느부갓네살과 맺은 언약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Allen, 498; Block, 547; Fausset, 262-63; Thompson, 116). 문맥을 통해서 볼 때 갑자기 시내산의 언약을 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한 것을 어겼기에 그 죄를 그 머리에 두겠다고 하신다.
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냥꾼이 되셔서 시드기야의 위에 하나님의 그물을 치고 하나님의 올무를 놓아서 걸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시드기야가 탈출을 시도했지만 느부갓네살의 군대에게 잡히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그물을 치신 것이고 올무를 놓은 것이다. 시드기야와 반역한 무리들을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끌고 가시는 것이다. 21절도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진다는 것이다. 남은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유다는 완전히 패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하셨다. 바빌로니아를 통해 연단을 받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시드기야의 문제는 그러한 하나님의 연단을 이집트를 의지해서 피해보려고 한 것이다. 바빌로니아에 잡혀갔던 사람들도 하나님 말씀을 듣기 보다는 들려오는 소문을 듣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헛된 소망은 산산조각이 난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실 때 그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안된다. 시드기야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내 생각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엉뚱한 길로 가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다고 생각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