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16:6-14

Dawn Word

에스겔 16:6-14

언약을 맺으시고 존귀한 신부로 삼아주신 하나님

2019. 11. 15.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16장 강해 설교

에스겔 16:6-14 벌거숭이 처녀와도 같았던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신부로 삼아 주시고 존귀한 왕비로 만들어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제 분수도 모르고 음란하게 창녀 짓을 하고 있던 예루살렘은 본래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아기와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이제 그런 버려진 아기 같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여행자로 묘사된다.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한다는 말은 상처를 입어서 피투성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그대로 출산혈로 범벅이 된 상태이고 탯줄도 자르지 않고 씻기지도 않은 상태 그대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를 발견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제발 살아만 달라고 제발 살아만 달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냉정하게 버린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면 한 두 시간 안에 죽을 아기를 불쌍히 여기셔서 입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강조된 것이다.

7절은 입양한 예루살렘이 성장한 모습을 들의 풀에 비유했다.

들의 풀처럼 많다는 말은 주로 숫자가 많이 늘어난 모습을 표현하는데 쓰는 말이다. 창세기 24:60절에서 리브가를 축복하여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라고 할 때 천만이라는 숫자로 쓰인 말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크게 자라 그 안에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일 것이다. Block은 여호와께서 돌보셔서 크게 자란 모습을 들에 있는 식물에 비유했다며 이는 또한 7절 뒷부분에서 음모가 자라는 것을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Block, 482). 산혈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탯줄까지 달려있던 버려진 아기가 이제 신체적으로는 다 자란 청소년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또 이어서 네가 크게 자라고 보석같은 시기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여자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16세쯤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가슴이 뚜렷하고 머리털도 자랐다고 했다. 머리털은 머리카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음모를 뜻하는 말이다. Block의 말처럼 들의 풀처럼 많아졌다는 말에 담긴 그림이 음모가 자랐다는 말과 겹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아직도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 자란 처녀가 벌거벗고 있다는 것은 핏덩이 아기가 버려진 것만큼 또한 위험한 것이다.

8-14절은 이제 결혼의 비유로 바뀐다. 8절도 6절과 똑같이 "내가 네 곁을 지나며 보니" 라는 말로 시작한다.

6절에서는 죽을 위기에 있는 핏덩이를 구해 주셨는데 이번에는 악한 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 장면이다.

한창 사랑스러운 때라는 말은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Allen은 한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옷을 펴서 덮어주는 것은 청혼을 하는 상징적인 행동이라고 했다(Allen, 463). 하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돌보시겠다는 뜻이다. 이어서 맹세하고 언약을 맺은 것은 혼인서약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 여호와의 말이라고 분명히 강조한다. 에스겔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9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물로 씻겨 주셔서 그 몸의 피를 없애 주셨다고 했다. 이 말을 가지고 어떤 이들은 4절에서 태어날 때 씻기지 않은 것을 씻어 주셨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룻기 3:3절처럼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른 것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룻기의 경우 스스로 씻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씻겨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Block는 결혼 절차 그 자체를 의미하며 피는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Block, 484). Block처럼 해석하면 결혼식에서 언약을 맺고 난 뒤 첫날밤을 치른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랑이 자신의 사랑하는 신부를 씻겨주고 기름을 발라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10절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신랑 되신 여호와께서 첫날 밤을 지낸 신부인 예루살렘에게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개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기고 고운 베로 속옷을 입히고 비단으로 겉옷을 덧입혀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왕비의 모습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핏덩이가 이제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의 신부가 되고 왕비가 된 것이다.

11-13절 앞부분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장식해주는 모습이다. 11절은 온갖 보물로 장식하고 팔찌를 끼워주고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준다. 12절은 코에는 코걸이를 걸어주고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준다.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준다. 13절은 이와 같이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모시옷과 비단옷과 수 놓은 옷을 입혔다. 결혼식도 마치고 첫날 밤도 지낸 그 다음날 이제 예루살렘은 왕비가 되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하나님 곁에 서서 온 세상에 나타나게 하신 것이다. 13절 뒷부분의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어 아주 아름답게 되고 마침내 왕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식을 말한 것은 계속해서 그러한 최고 존귀한 지위를 누리며 살았다는 뜻이다.

14절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아름다움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명성이 여러 이방 나라들에게 퍼졌다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본래 아름다워서 가 아니다. 본래 핏덩이였고 벌거벗은 처녀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시고 입혀 주시고 장식해 주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푼 화려함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이 완성된 것이다. 그 화려함은 원어에서 "나의 화려함" 이기에 예루살렘의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벌거숭이 처녀에 불과했던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다 자란 처녀가 가슴과 음모를 드러낸 채 있던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옷자락으로 가려주시고 언약을 맺어 신부로 삼아 주시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기름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해 주셔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신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실제로 하나님의 부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길러 주시길 원하셨다는 비유이다.

이 모든 것은 다 빚이다. 예루살렘은 여호와께 큰 빚을 진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빚진 자의 심정으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왕비가 되어 누리며 살다가 그 은혜를 잊고 교만해지기 쉽다.

그렇게 교만해 졌던 사람들이 고린도전서 4:7절에 나온다. 바울은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 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라고 했다. 고린도 교회 지도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귀하게 해 주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을 잊고 자기들이 스스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나 역시 우리 주님 아니었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핏덩이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 주님이 아니었다면 벌거숭이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구해 주셔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라는 찬양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그 은혜를 잊으면 빚을 떼어 먹고 다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파렴치한 빚쟁이인 셈이다.

에스겔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