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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14:21-23

Dawn Word

에스겔 14:21-23

심판을 통해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2019. 11. 12.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14장 강해 설교

에스겔 14:21-23 예루살렘 멸망 때 살아 남아 아들 딸을 데리고 바빌로니아로 온 사람들의 악행을 보고 바빌로니아에 이미 포로로 잡혀와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고 오히려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게 된다.

이전 말씀에서는 우상을 품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나아와 회복의 때를 묻는 자들은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쟁과 전염병을 통해 모두 다 완전히 멸하신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어떤 나라가 예루살렘이라고 지목하시면서 그들의 멸망은 오히려 여호와의 자비하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21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네가지 재앙에서 노아 다니엘 욥이 있다고 해도 그들 자신만 겨우 목숨을 건질 것이라는 말의 이유가 된다. 그 이유는 이제 주 여호와가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아무도 그 심판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과 짐승을 사라지게 하려고 네가지 맹렬한 재앙들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내린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한번만 쳐도 그 피해가 이렇게 심한데 만약 이 네가지 재앙들로 예루살렘을 치신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이다.

22절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한번 치셨을 때 그 중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2절은 "그러나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놀라운 구경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경거리는 예루살렘의 멸망 때 생존자들이 남아 있을 것이는 것이다. 그 구경거리는 생존자들이 아들들과 딸들을 데리고 바빌로니아로 올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무도 못 데리고 나온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이 아들 딸들을 데리고 나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Block은 앞에서 말한 심판에 대한 원칙은 변함이 없지만 우연히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는 마치 아모스 3:12절이나 이사야 17:6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Block, 451). 아모스 3:12절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라고 했고 이사야 17:6절은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 개가 남음 같겠고" 라고 했다. 이들은 의로워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사람도 아무도 건지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빌로니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으시려고 살아남게 하신 것이다.

22절 뒷부분에서 또다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번에 구경거리는 아들 딸을 데리고 바빌로니아까지 피난 온 사람들의 행동과 소행이다. 새번역은 "악한 행실과 행동" 이라고 번역해서 악한 이라는 말을 추가 했지만 원어에는 없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 행동이 그들의 의로운 행동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그들이 거룩해서 놀라운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들의 악한 행동과 소행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사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도 역시 악한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도 이렇게 깜짝 놀랄 만큼 악한 것을 보고는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곳에 내린 모든 것에 대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살아 남아서 바빌로니아까지 온 사람들의 행동과 소행을 보면 앞에서 말한 네 번 심판해도 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심판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비인 것이다. 네 번이 아니라 일곱번을 심판해도 싸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심판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악한 자신들도 그 자비하심을 입을 것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23절은 그들이 위로한다고 한 것이다. 아들 딸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포로로 끌려 온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바빌로니아 포로로 끌려 온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과 소행을 볼 때 그들이 그 행동과 소행으로 위로해 준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악함에 자신들을 비추어 보고 자신들이 회개하면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심판하신 것이 공연한 것이 아닌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도 역시 여호와의 말씀이라며 이 부분을 끝맺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자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죄를 보지 않고 심판의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도 자신들의 죄는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만 가혹하다고 했던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것이다.

심판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나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모두가 다 악한 사람들이다.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재건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생각하며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남겨 두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 역시 그들과 똑 같은 죄인인데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을 때도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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