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1-11 우상들을 마음에 품고 잘못된 길을 바라보고 가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들의 회복의 때를 물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심판하심으로 직접 대답하신다. 묻는 자 뿐만 아니라 거짓된 대답을 해주는 자들까지 직접 심판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마법과 거짓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여자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풀어 주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는 거짓된 예언을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거짓된 예언을 듣기를 원하는 자들도 심판하신다는 내용으로 연결이 된다.
1절은 이스라엘 장로들 몇 사람이 에스겔 앞에 앉았다고 했다. 8:1절에서는 유다의 장로들이라고 했다. 포로로 잡혀온 이들은 모두 유다 사람들이기에 유다의 장로들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라고 한 이유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중에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에스겔 앞에 앉아 있을 때 2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다.
3절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새로운 말씀을 주신다는 뜻이다. 에스겔 앞에 앉아있는 장로들은 먼저 그들의 마음 안에 우상들을 들여놓고 사는 자들이다. 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자기들 앞에 두었다고 했다. 자기들 앞에 두었다는 말은 자기들 얼굴 앞에 두었다는 뜻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바라보며 따라간다는 뜻이다. 마음 안에는 우상들을 품었고 그 눈은 의도적으로 잘못된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이들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품었을 것이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행하던 주술이나 부적같은 것을 따랐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는 다른 신들을 두고 다른 신들의 길을 따라 걸려 넘어지는 길로 행하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에스겔 앞에 앉은 것이다. Block은 이들이 점쟁이를 찾아오듯 에스겔에게 온 것이라 했다(Block, 426). 이들은 마치 이전 말씀에 나온 점을 치며 거짓 예언을 하는 여자들 앞에 나오듯 에스겔 앞에 온 것이다. 에스겔이 자신들의 미래에 희망적인 일이 있을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온 것이다.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뒤섞어 놓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3절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4절은 이제 그 내용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다는 것이다. 3절에서 말씀하신 두가지를 그대로 반복한다. 에스겔 앞에 있는 장로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중 누구든지 그 마음에 우상들을 들여놓고 걸려 넘어지는 길을 바라보고 의도적으로 그 길로 가면서 예언자에게 오면 하나님께서 그 많은 우상들과 함께 온 것에 걸맞게 직접 말씀하시겠다는 것이다.
5절은 4절에 연결된 문장이다. 우상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6절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하라고 한 것은 저들이 듣고 싶어하는 언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지가 아니라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고 우상에게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너희의 모든 역겨운 것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라는 것이다. 이제 우상들을 버리고 우상들이 이끌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5절에서 우상에게로 떠나버린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그들의 마음을 잡겠다는 뜻이 아니다.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사로잡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7절은 4-5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반복하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라엘 족속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머무는 외국 사람들까지도 포함한다. 3-4절에 나온 것처럼 우상들을 마음에 두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길을 의도적으로 바라보며 따라가는 자들이 예언자를 찾아 오면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8절은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정면으로 노려보시는 것이다. 이는 대적을 바라보시고 곧 멸하시기 위해서 노려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셔서 그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장로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끝이 났다.
9절은 이제 예언자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9절은 예언자가 그들의 말에 넘어가 그들이 원하는 어떤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선포하면 여호와께서 그 예언자를 꾀임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직접 손을 뻗쳐서 그 예언자를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몇 줌의 보리와 몇 조각의 빵을 받고 거짓 예언을 해주던 여자들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예언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언자까지도 멸하신다는 것이다. 10절은 물어보는 사람들이나 거짓 예언을 말해주는 예언자들이나 똑같기 때문에 모두 각지 자기 죄값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11절은 이렇게 자신들의 마음에 원하는 예언을 기대하고 묻는 자들이나 그들이 원하는 거짓 예언을 말해주고 인정을 받는 예언자들이나 다
똑같이 심판하시는 목적이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지 않고 또한 다시는 그들의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언제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질지 궁금해 한다. 또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를 궁금해 한다. 그 날이 오면 믿는 자들은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대답해 주시지 않는다. 대신 우리 마음에 둔 다른 세상 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세상 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마음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실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귀영화 누리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살 것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면 마음 속에 우상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앉으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다.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경히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자신들이 원하는 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궁금하다면 교회에 나오지 말고 점쟁이들을 찾아가라. 하나님 앞에 나와 그런 것을 궁금해 하는 자나 그런 자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자나 하나님께서 직접 멸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의 다른 탐욕들을 다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그 빈 자리에 성령님께서 좌정하셔서 충만하게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