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1:1-13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던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멸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버리고 떠나시기 전 동쪽 문에서 잠시 머무르셨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말씀은 주의 영이 에스겔을 성전 동쪽 문으로 데리고 가시는 내용으로 연결이 된다.
1절의 25명은 아마도 8:16절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8:16절과는 달리 이들이 하는 일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들 중에 야아사냐와 블라댜만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은 백성의 고관들이라고 했다.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는 8:11절에 나온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와는 다른 사람이다.
Cooper는 최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공문서를 봉하는 도장같은 것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 이 두사람이 있다고 했다(Cooper, 139). 이 두사람은 분명히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고위 관료임에 틀림이 없다.
2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들이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 악한 꾀를 꾸미고 있다고 했다. 포악한 일을 꾸며내며 사악한 조언을 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왕이 악한 길로 행하고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는 뜻이다.
3절의 집 지을 때가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Cooper는 이 말을 네가지로 해석된다고 소개하면서 그는 아직 집을 지을 때가 아니고 전쟁을 준비할 때라는 해석을 선택했다(Cooper, 139-40).
Block도 지금은 집을 짓는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해석하며 자세한 이유를 덧붙였다. 이들은 고관들이 모두 바빌로니아로 잡혀갔기에 자신들이 현재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이 된다면 자신들은 다스리는 자리에 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Block, 333).
이어지는 이 성읍은 가마솥이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라는 비유가 이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뒷받침해 준다. Block은 예루살렘을 비유한 솥이 안전한 보관 장소라는 것이다(Ibid, 334). 금방 잡은 고기를 잘라서 솥 안에 넣고 뚜껑을 덮어 놓았으니 다른 동물들이나 벌레들이 먹지 못한다는 뜻이다. 잘라서 넣어 놓은 고기는 바로 잡혀간 고관들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새롭게 다스리는 자리에 오른 자신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자리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루살렘에 남아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던 자들을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규탄하고 예언을 하라고 하신다. 5절은 그 때 주님의 영이 자신에게 내리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전하라는 말씀은 너희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다
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고관들이 다 잡혀간 상태에서 그들의 지위와 재산을 차지하고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그 마음을 다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들의 마음만 아시는 것이 아니다. 6절에서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다는 말은 자신들이 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막으려는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뜻이다.
악한 마음을 품고 잘못된 재판으로 반대자들을 숙청한 것도 다 아신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이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솥단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7절에서 아니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은 너희들을 보호해 주는 솥단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이 죽인 시체들만 그 성 안에 남아있고 저들은 예루살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끌려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8절은 그렇게 솥단지에서 끌려 나오면 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그 고기들을 난도질 하시는 것이다.
9절은 이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긴다는 것이다. 타국인의 손을 통해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10절에서도 심판은 계속 이어진다. 10절은 칼에 쓰러질 것이라 했다. 이스라엘 국경에서 심판하겠다고 하셨다. 그 때에야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11절은 왜 이스라엘 국경에서 심판하시겠다는지 그 내용이 나온다. 예루살렘은 이 악한 자들을 보호하는 솥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 국경에서 끌어내어 국경 밖에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12절에서도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고 또다시 반복하신다. 그렇게 심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례란 그날 그날 하도록 정해준 일감을 뜻하는 말이다. 날마다 지켜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규례란 현명한 재판을 내린 판례들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현명한 재판을 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방사람들의 규례를 따라 행했다는 것이다.
13절은 에스겔이 예언하는 동안에 블라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블라다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 블라다의 죽음은 남아있는 자들까지 다 멸하신다는 신호이기에 에스겔은 주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한 것이다. 남은 사람들을 다 멸하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는 회복의 메시지가 이어지기에 완전한 멸망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던 살아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의 탐욕과 습관을 따라 산다면 우리 역시 심판의 대상이다. 말로만 떠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그 말씀을 실제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실제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드러난 행동까지 다
아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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