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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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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에스겔 10:1-8

예루살렘을 불로 태우시는 하나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 에스겔 47장

2019. 10. 25.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10장 강해 설교

에스겔 10:1-8 하나님께서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숯불을 집어 예루살렘 위에 뿌려 다 태우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먹통을 든 사람을 시켜서 가증한 우상숭배를 애통해 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하게 하시고 나머지는 다 죽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불태우시고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의 첫 부분이다.

1절은 1:26절에 나온 그룹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묘사한 내용이 다시 나온 것이다. 1장에서 묘사했던 모습들은 이제 그룹들(‎כְּרֻבִ֔ים : Cherubim)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 그룹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떠 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2절은 하나님께서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룹들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불타는 숯들을 움켜 쥐어서 이 성읍에 뿌리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에스겔이 보는 앞에서 그곳에 들어갔다. 베옷을 입은 사람은 더 이상 붓과 먹통을 들고 있지 않다.

3절은 바로 그 때 여호와를 운반하던 그룹들은 하나님의 전차를 성전의 오른쪽에 주차했었다는 것이다. 많은 영어 번역들은 원어의 오른 쪽이라는 말을 남쪽이라고 번역했다(ESV, NIV, RSV, NLT). 오른 쪽은 남쪽이기 때문이다. 8:3절과 5절을 보면 가증한 우상들이 북쪽 문이 있는 곳에 있었다고 했다. Hamilton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부정한 것들로 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지시려고 성전의 오른쪽에 임재하신 것이라고 했다(Hamilton, 568).

3절에서는 구름이 안 뜰에 가득찼다고 했다.

이는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들이다. 에스겔이 눈으로 본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4절에서는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서 떠 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 가셨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는 것일 것이다. 에스겔은 또 다시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차고 안뜰은 주님의 영광의 광채로 가득 찼다고 했다. 3절에서는 구름이 안뜰에 가득찼다고 했는데 이제 4절에서는 성전에 가득 찼고 이제 구름이 가득 찼던 안뜰에는 주님의 영광의 광채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Greenberg는 2절에 나온 뿌린다는 말이 주로 제사장이 정결케 하는 일에 쓰이는 말이라며 숯불을 뿌리는 것 역시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보았다(Greenberg, 181). Cooper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불타는 숯불로 예루살렘에 있던 남은 자들을 정결하게 하시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잠시 그곳에 머무신 것이라고 했다(Cooper, 129). 그렇다면 이는 마치 제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신 것과도 같은 것이다(사 6:3).

그러나 반대로 Fausset은 이 숯불은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태우시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Fausset, 231). Fausset은 제단에서 취한 숯불이라면 화해의 숯불이겠지만 그룹들의 바퀴 사이에서 취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Alexander 역시 이 숯불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고 했다(696). Block도 전체적인 문맥은 심판을 나타낸다며 이러한 문맥 속에서 정결케 한다는 뜻밖의 주제를 소개하는 것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의인들의 이마에 표시를 한 것이 쓸데 없는 것이 된다고 했다(Block, 322). Allen도 그룹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할 심판의 숯불을 공급한다고 했다(Allen, 314). 그렇다면 이 숯불은 단지 예루살렘을 불로 심판하신다는 뜻인가?

Cooper는 이 부분의 서론 부분에서는 숯불이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2절을 설명한 끝부분에서 이 숯불이 심판과 정화 둘 다 맞다고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 단순히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을 정결하게 하여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시려는 것이라고 했다(Ibid., 130-31).

앞에서 의인들의 이마에는 표시를 해서 살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다 무자비하게 죽였던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심판은 끝난 것이다. 이제 온 도시가 피와 시체들이 가득하므로 도시 전체가 부정한 것이다. 게다가 가증한 우상들은 북쪽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남쪽에 임하셨다고 했다.

그렇기에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심판보다는 부정한 예루살렘의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룹들이 갖고 있던 불로 예루살렘을 다 태워서 부정한 것들을 다 없애시려는 것이다. 의인들은 표시를 해서 살려 두고 나머지는 다 죽인 뒤에 불을 내리시도록 명령하셨기에 심판과 동시에 부정한 것을 다 없애시고 정결하게 만드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아직 하나님 계시기에 정결한 곳은 아니다.

3-4절에서는 눈으로 본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5절은 귀로 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룹들이 날개치는 소리가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Alexander는 그룹들의 요란한 날개소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그 성전으로부터 떠나게 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Alexander, 696). Hamilton과 Allen 역시 그룹들은 하나님의 전자를 대기 시키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날개를 요란하게 펄럭이는 것이라 했다(Allen, 322; Hamilton, 568). 하나님께서는 의인들만 구해내시고 나머지는 다 멸하신 다음에 불로 다 태우신 뒤 떠나시려는 것이다. 하지만 남은 자들이 있기에 완전히 떠나시는 것은 아니다. 불로 태우시고 정결하게 되는 동안 떠나 계실 것이다.

6절은 다시 2절과 연결이 된다. 중간에 3-5절은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과 그룹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설명한 것이다. 그 다음에 다시 하나님께서 베옷 입은 사람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다. 6절의 명령은 2절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바퀴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가라고 했고 그는 안으로 들어가 바퀴 옆에 섰다.

7절은 그 때에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넘겨준다. 그러자 그는 그 불타는 숯불을 받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예루살렘 전체에 뿌려 태우기 위한 것이다. 8절은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 손 같은 것이 보였다고 했다. 그 손으로 숯불을 집어 베옷 입은 사람에게 준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장면은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우상들로부터 가능한한 멀리 떨어지시려는 장면이다. 또 모두가 가증하고 부정하기에 모두 다 불태우고 떠나시려는 장면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우상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가 다른 것을 우리 마음에 둔다면 성령님께서도 우리 마음 중심에 계실 수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도 가증한 것에서 멀리 떨어지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계속 거듭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우상들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들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재물들과 권력과 명예 같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갖고 싶어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들이 오늘날의 우상들이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할 때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셨다.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시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재물과 권력과 명예 같은 것들을 주인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가증한 우상들을 버리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이 자리잡고 있다면 모두 버리고 완전히 태워버리자. 그래서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 멸하시고 태워 버리시고 떠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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