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9:1-11 하나님께서는 먹통을 든 사람을 시켜서 가증한 우상숭배를 애통해 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하게 하시고 나머지는 다 죽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은 스물 다섯명의 사람들이 아침 해가 성전 문에 비쳐올 때 하나님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경배하며 하나님을 모독했기에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이었다. 9:1절도 원어에는 그리고 라는 접속사로 연결된다. 앞부분에서 성전을 더럽힌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에스겔이 본 환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1절은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치셨다는 말로 이어진다. 새번역은 "그가 큰 소리로 외치시는 데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라고 했다.
새번역이 문맥에 훨씬 잘 어울린다. 하지만 원어는 원어는 그가 에스겔의 귀에 큰 소리로 외쳤다는 뜻이다. 개역은 문맥과 상관없이 초보적인 수준으로 직역을 했고 새번역은 전 후 관계를 살펴서 의미역을 한 것이다.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오게 하셨다는 것이다. 개역에서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 이라는 말도 역시 이 말의 가장 기본적인 사전적 의미대로 번역한 것이다.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란 통치자들인데 악한 자들을 모두 벌하고 의로운 자들은 살려 두는 것이 그 본래의 일이다. 이는 유다의 왕과 그 신하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심판자이다.
이사야 10:3절에서 "여호와께서 벌하시는 날" 이라는 말에서도 이 말을 벌한다는 뜻으로 썼다. 단어는 문맥 속에 있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여기서 의미는 분명히 심판자이고 벌하시는 자이기에 새번역의 번역대로 "성읍을 벌할 사람들" 이라는 번역이 옳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새번역처럼 사형 집행관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이들은 재판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형 집행관들이다.
이들은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처분을 내려 현장에서 사형을 시킬 것이다.
2절은 이들이 북쪽으로 향한 문과 연결된 길로 들어오는데 죽이는 무기를 잡았다고 했다. 죽이는 무기라는 말도 개역은 원문의 의미를 죽여 놓았다. 이는 벽을 털거나 때려 부수는 철 연장을 뜻하는 말이지 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51:20절에서는 "너는 나의 철퇴" 라고 한 말에서 철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이들은 아주 묵직한 철퇴를 들고 모두 다 한방에 때려 부수려는 것이다.
또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다고 했다. 개역은 "먹 그릇"
이라는 한국말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을 만들어서 번역했는데 새번역은 "먹통"
이라고 번역했다. 먹통이라 하면 또 한국의 목수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에 그렇게 번역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먹통은 이집트 사람들이 쓰던 것이고 성경을 필사하던 서기관들이 쓰던 도구이다.
또 베 옷은 제사장의 옷이다. 그러나 Block은 이 사람이 제사장인지 천사와 같은 존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Block, 304). 이 사람은 제사장의 옷을 입고 서기관 먹통을 차고 솔로몬 때 만든 놋으로 된 제단 곁에 섰다.
3절은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또 올라서 성전 문지방에 머물렀다. 그는 베 옷을 입고 먹통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1장에서 자세히 묘사한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던 생물들이 이제 여기서 처음으로 그룹(Cherub)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서기관의 필기도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실 것이다.
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명령한 것은 예루살렘 성을 두루 다니면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셨다. 이마에 쓰라고 하신 글씨는 히브리어 마지막 문자인 '타우' 이다. 고대의 흘림체로 쓰면 X나 십자가와 비슷한 모양이기에 터툴리안은 구원의 표지인 십자가를 나타낸다고 했다(Fausset, 229에서 재인용). 하지만 구약성경 어디에도 '타우'가 구원받은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쓰인 적이 없기에 지나친 해석이다. '타우' 는 고대에 소유권을 나타내는 표시로 사용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소유인 백성들의 이마에 소유권을 표시하신 것이다(Block, 307).
5절은 베옷을 입고 먹통과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쳐서 죽이라 하셨다. 먹통을 든 사람을 따라 다니다가 그 사람이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하면 그 사람들만 살려 두고 나머지는 다 죽이라는 것이다. 죽이는 원칙이 있다. 첫째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불쌍하게 보인다고 해서 살려 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쳐서 라는 말인데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살살 치지 말고 완전히 죽을 때까지 치라는 뜻이다.
셋째 원칙은 6절에 나오는데 죽여야 할 대상이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이다. 딱 하나 빠진 사람들이 있는데 힘센 장정들이다. 이들은 모두 다 이미 전쟁터에서 다 죽었기 때문이다.
성에 남아 있는 자들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모두가 다 보면 불쌍해서 죽일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자비한 사형 집행을 성소에서 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으로 피하면 안전하다며 위험할 때는 성전으로 피했다.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에 성전에 있으면 아무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로 성소에서부터 죽이기 시작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먼저 성전에 있던 늙은 자(개역)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개역개정은 이들이 성전에 모여 있던 이스라엘을 대표하던 노인들이었기에 장로들이라고 고쳐 번역한 것 같다.
7절은 그렇기 때문에 성전을 더렵혀서 시체로 모든 뜰을 채우라 하신 것이다. 아무도 성전에서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성전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을 다 죽여서 그들의 시체로 가득 채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성전을 시체로 가득 채우게 하신 뒤에 성전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서 나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8절은 그들이 철퇴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쳐 죽이고 있을 때 에스겔만 혼자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전 안에는 이마에 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뜻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자들이 다 죽은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엎드려 부르짖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렇게 분노를 쏟으시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두 멸하려 허시는지 울부짖은 것이다. 지도자들은 느부갓네살이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 남아 있던 자들은 하나도 남지지 않고 다 죽게 되고 이제 이스라엘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9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에스겔이 울부짖은 말에 대답을 하신 것이다. 9절에 나온 내용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 백성들의 죄의 강도가 너무 높고 범위도 너무 넓기 때문이다. 둘째 피로 온 땅이 가득하다. 17절에서 폭력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고 이미 저들의 죄를 말씀하셨다.
셋째 불법이 온 성에 가득히 차 있다는 것이다. 넷째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 땅을 이미 완전히 버렸고 쳐다 보지도 않으신다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껴보지 않으며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신다고 했다. 5절에서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아끼지도 말라고 한 말과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5-10절의 내용들을 바깥 쪽에서 감싸고 있고 아끼지도 않는다는 말이 안쪽에서 감싸고 있다. 이제 완전히 끝이 났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완전히 버리시는가 하면 그들이 행한 그대로 그 머리 위에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상을 섬겼으니 그 머리를 철퇴로 박살을 내신다는 것이다.
11절은 베옷을 입고 필기도구를 들고 나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보고한다. 명하신 그대로 임무 완수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단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멸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데도 아끼지도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지도 않으셨다.
이 환상의 주된 초점은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증하게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던 자들을 다 죽이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도 의로운 사람들을 표시하셔서 남기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표시하신 사람들 이외에는 어떤 불쌍한 사람이라도 단 한사람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처럼 완전히 멸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주님 다시 오실 때도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라고 표시한 사람들만 남기고 다 멸하실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확정된 것이다. 아무도 멸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그 이마에 하나님의 소유로 표시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철퇴로 그 머리들을 깨 버리실 것이다.
교회에 나온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도 성전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먼저 다 죽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심판 때도 역시 교회에서 먼저 다 죽이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잔머리 굴리며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살면서도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 먼저 죽이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