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7:12b-18 하나님께서 진노의 삼종 세트를 쏟아 놓을 것이니 다시는 희년도 없을 것이고 회복되지 못하고 다 멸망할 것이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심판의 도구가 왔다.
다스릴 사람도 물질도 명예도 다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희년에는 팔았던 재산들이 돌아오기 때문에 기뻐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러한 희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잃은 것들은 희년이 되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절 뒷부분에서 13절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식년(Sabbath Year)과 희년(Jubilee Year)을 이해해야 한다. 레위기 25:8-28절에 보면 희년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매 칠년마다 안식년을 두는데 그 안식년에는 종으로 팔려간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이다. 또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면 희년이다.
희년에는 토지를 팔았어도 희년에는 본래 소유 주에게 돌아가는 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지를 파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때가 되면 그 토지는 다시 그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은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는 자도 그 땅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사는 자도 역시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모두를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3절은 그러한 희년 제도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그 땅을 지배하고 이방인들의 법이 그들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는 자가 희년까지 살아 있다 해도 다시 그 판 것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무리들에게 보여준 묵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묵시란 비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에스겔에게 보여 주시고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된 그 비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죄악으로 인해 아무도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14절은 나팔을 불어도 모든 것을 다 준비했어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짓다가 군대로 소집한다는 나팔을 불면 모두 나가서 무기를 갖추고 군대로 모여 나가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무기를 다 갖추어 놓고 나팔을 불어도 아무도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죽었거나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의 모든 무리들에게 이르렀기 때문이다.
15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칼과 전염병과 기근 이렇게 삼종 세트이다. 이 삼종세트는 5:12절과 6:12절에서 이미 나왔다.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자들은 밭을 갈러 성읍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들은 적의 칼에 죽는다는 것이다. 성읍 안에 있는 자들은 적은 없지만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기에 굶어 죽고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전염병에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 죽는 것은 아니다. 16절에 보면 일부가 살아 남아서 산으로 도망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골짜기의 비둘기가 우는 것처럼 슬피 울 것이라는 것이다. 왜 골짜기의 비둘기가 우는 것 같다고 했는가? 비둘기는 산비둘기일 수도 있지만 본래 이 말은 집비둘기를 가리키는 말이다(Block, 261). 이는 산으로 도망친 예루살렘 사람들이 산으로 피한 것이 집을 잃고 산에 숨은 비둘기 같다는 비유일 수 있다. 이는 또한 살아 남아서 산속에 있는 골짜기에 숨은 사람들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마치 비둘기 우는 소리 같다는 뜻이다.
17절은 모든 손이 피곤하다고 했다. 새번역은 손에 맥이 풀린다고 번역했다.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모든 팔들이 축 늘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에스겔 1:24, 25절에서는 생물들이 날개를 드리웠다고 할 때 나왔다.
힘차게 펄럭이던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는 뜻이다. 에스겔 21:12절에서는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 지며" 라고 했다. 이는 7:17과 똑같이 두려움 때문에 맥이 풀렸다는 뜻이다. 또 모든 무릎들은 물같이 된다고 했다. 무릎에도 맥이 완전히 풀려 물처럼 흘러서 땅바닥에 퍼져버린다는 뜻이다. 엄청난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온 몸에 맥이 완전히 풀리는 것이다.
18절은 먼저 굵은 베로 몸을 두를 것이라 했다. 이는 큰 슬픔을 당했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었기에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굵은 베를 두르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그들을 덮는다 했다. 굵은 베로 몸을 가리는 것과 두려움으로 뒤덮이는 것이 대조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굵은 베로 자신들의 몸을 뒤덮었지만 두려움이 자신들을 뒤덮는 것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얼굴에 수치가 있다는 말에서 수치는 굵은 베를 입는 것과 연결이 되는 말이다. 시편 89:46절에서는 수치로 덮으셨다고 했는데 부끄러운 베옷을 입히셨다는 뜻이다. 오바댜 1:10에서도 수욕을 입는다고 했기에 역시 부끄러운 옷으로 비유한 말이다. 대머리도 역시 큰 슬픔을 당했을 때 머리를 미는 것이다(사 3:24; 렘 48:37; 미 1:16).
모두가 다 죽고 남은 자들은 모두 두려움과 수치와 슬픔에 잠길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온 심판은 징계의 채찍을 넘어선 하나님의 분노의 삼종 세트이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때리실 때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로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분노의 삼종세트를 선물로 주실 때는 모두가 다 멸망하는 때이다. 아직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만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우리도 인내하며 따라가며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