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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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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에스겔 5:11-17

예루살렘을 완전히 밀어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시는 하나님

2019. 10. 5.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5장 강해 설교

에스겔 5:11-17 하나님께서는 수염과 머리털을 밀 듯 예루살렘을 완전히 밀어 버리시고 레위기에 나온 저주대로 그 분노를 예루살렘에게 쏟아 완전히 멸망시키겠다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그 백성들에게 전무후무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의 내용을 앞 뒤에서 감싸고 있는 것은 "나 주가 말한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분명히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11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그러나 10절과 연결된다기 보다는 5-6절에서 기소한 내용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7, 8절과 마찬가지로 5-6절에서 기소한 내용이 사실이므로 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이어지는 말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분명히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는 것도 역시 분명히 그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내 성소를 더럽혀 놓았다" 라는 것이다. 더럽혀 놓았다는 말은 레위기에 많이 나오는 말이기에 성소를 제의적으로 더럽혔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성소를 더럽혔는가 하면 첫째는 모든 미운 물건(개역) 즉 온갖 보기 싫은 우상들(새번역)이다. 우상들로 성소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가증한 일이다. 레위기 11:22절에서는 남자들끼리 동성애를 가증한 일이라고 했다. 신명기 32:16절에서는 우상숭배를 가증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온갖 보기 싫은 우상들과 짝을 지어 나왔기에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이러한 가증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행동은 개역을 보면 "아껴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이 세가지이다.

먼저 예루살렘을 아까지 않겠다고 했다.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새번역은 칠십인역을 따라 넘어뜨린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히브리어가 가진 본래의 뜻은 면도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NIV도 "I myself will shave you" 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는 덜어내거나 내던진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이사야 15:2절에서는 극단적인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털과 수염을 면도칼로 밀어버린 것이다. 예레미야 48:37절에서도 역시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털과 수염을 밀었다. 그렇다면 아끼지 않았다는 말은 예루살렘이 죽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제 머리털과 수염을 밀듯 완전히 밀어 내 던진다는 뜻이다.

둘째는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개역: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이는 눈으로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눈으로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은 눈물도 흘리지 않겠다는 뜻이다(Block, 210). 죽은 예루살렘은 이제 부정한 존재이기에 눈물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슬프기는 하지만 예루살렘은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 더러운 죄악 때문이다.

셋째는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다고 했다. 개역은 미약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다. 히브리어로는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고 번역할 수도 있고(ESV) 아끼지 않겠다고 번역할 수도 있다(NASB, NIV). 역겹기에 면도칼로 밀어서 내던져 버리고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마음으로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예루살렘을 밀어서 내던지시면서도 눈물도 흘리지 않고 마음으로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이 너무나 오랫동안 우상숭배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밀어서 내 던지신 것이다.

12절은 2절에서 에스겔에게 머리털을 셋으로 나누어 불태우고 칼로 내려치고 바람에 흩은 뒤 칼을 빼어 들고 쫓아가는 연극을 하게 하신 뜻을 밝힌 것이다. 삼분의 일은 불에 타 죽는 것은 전염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이다. 이는 적에게 포위되어 굶주리다가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뒤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이다. 삼분의 일은 칼에 맞아 쓰러지는 것은 적이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와 전투 중에 칼에 맞아 죽는 것이다. 삼분의 일은 사방으로 흩어 버리신다고 했다. 살아 남은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을 가겠지만 하나님께서 칼을 들고 쫓아가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분노는 11절에서 미련없이 면도하듯 밀어버리고 돌아서신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칼을 들고 쫓아갈 정도의 분노를 품으신 것이다.

13절은 여호와께서 분노를 다 쏟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담겨있는 분노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쏟아 놓으시겠다는 것이다. 분이 풀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열이 쉰다는 뜻이다. 분노로 인해 열이 계속 올라갔는데 이제 그 열기가 가라앉고 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하게 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분노를 다 쏟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질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예루살렘을 열방들 가운데서 높이셨었다. 그러나 14절은 이제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폐허더미와 웃음거리로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아름답고 찬란했던 예루살렘은 이제 철거한 낡은 건물과도 같고 쓰레기 더미와 도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존경받던 예루살렘은 이제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15절은 원어에서 수치와 조롱을 당한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러한 수치와 조롱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경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단순히 조롱하며 웃고만 지나갈 일은 아닌 것이다. 그들도 똑같이 당할 것이기에 그들에게도 엄청난 공포감을 주는 경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과 노를 품고 무서운 형벌을 내릴 때 그렇게 이방 사람들에게도 공포감을 주는 경고가 된다는 것이다.

16-17절은 레위기 26장에 나와있는 불순종했을 때의 저주의 그 느낌을 담아 이 부분의 심판의 메세지를 마무리한다. 16절에 나오는 재앙은 기근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했던 예루살렘을 향해 기근의 화살을 쏘고 계신 것이다. 이 화살은 단순히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려고 편지를 매어 쏘는 화살이 아니다. 이는 분명히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고 쏘는 화살이다. 그 기근은 점점 더 심해지고 너희가 의지하는 빵을 끊어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빵을 끊는다는 말은 레위기 26:26절의 인용이다.

17절은 기근과 함께 사나운 짐승들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레위기 26:22절에서 온 말이다. 그 짐승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자식들을 잡아 먹는다. 또 전염병으로 죽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전염병은 사람들과 가축들이 모두 죽는 것이다. 또 살륙(새번역: 유혈사태) 은 피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뜻한다. 이는 대적의 칼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는 것을 뜻한다(Block, 215). 대적의 칼에 죽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새번역: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겠다)" 라는 말에 나오기 때문이다.

17절은 참으로 끔찍스러운 장면들이다. 굶어 죽어가고 사나운 짐승들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전염병에 걸려서 죽고 먹을 것이 없어 서로가 서로를 죽여 잡아 먹는다. 게다가 적의 공격을 받아 적의 칼에 죽게 되는 것이다. 17절 끝부분은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는 말로 끝이 난다. 이 모든 말씀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예루살렘은 마치 호세아에 나오는 고멜과도 같다. 음란한 고멜을 참고 또 참으며 다시 아내의 자리에 데려다 놓던 호세아처럼 하나님도 음란한 예루살렘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으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신부의 자리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와 경고의 시간이 지나가면 이처럼 무서운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머리털과 수염을 면도해서 버리듯 완전히 밀어 버리시는 것이다.

우리도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들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세상의 다른 우상들을 뒤섞어 놓으면 절대로 안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것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 사랑과 자신의 음란한 탐욕을 뒤 섞어 놓는 일이다. 로마서 3:23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1:18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러한 죄인들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뒤를 따르며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절대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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