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5:5-6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높여주셨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율례를 이방인들보다 더 거스리고 지키지 않았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머리털을 전쟁용 칼로 밀고 그 삼분의 불태우고 삼분의 일은 칼로 베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린 뒤 쫓아가며 베라 하셨다. 일부는 옷자락에 싸서 운반하다가 불에 사르라고 하셨다. 이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예루살렘이라며 분명하게 예루살렘의 죄를 기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연극하듯 보여준 것을 보고 그것이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5절은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라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이제 하나님 심판의 말씀이 공식적으로 선포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라는 말은 4:1-5:4절에서 보여주신 것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만들라 하시고 부정한 빵을 먹게 하시고 머리털을 밀어 태우고 칼로 치고 바람에 날리고 옷자락에 넣어 두었다가 불 한가운데 던지라고 하신 그 모든 것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Block은 "이것이 예루살렘" 이라는 말이 법정에서 증인에게 피고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Block, 197). 그러나 피고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다(Fausset, 216). 특별히 유다의 중심인 예루살렘에 사는 유다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과 상류층 주민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예루살렘은 이방 사람들 한 가운데 두고 모든 나라들이 둘러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Fausset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루살렘은 세상의 중심이라 했다(Fausset, 216). Block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에 배정하셨다고 했다(Block, 197). Allen도 역시 이 말은 예루살렘의 중심성을 표현한다고 했다(Allen, 175). Dyer는 이 말이 주변 나라가운데 높여진 것을 뜻하며 지리적으로 중동지역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Dyer, 1237).
오늘날 우리의 관점으로 보아도 예루살렘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다른 대륙들과 연결되는 점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 중심을 두신 것이다. 이어지는 6절과 연결해 보면 Dyer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 가운데 높이셨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리적으로도 중동의 중심이라기 보다는 구대륙의 중심인 것이다.
6절은 그런데도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 보다 더 악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렸다는 것이다. 거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규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인가? 규례(mispat)란 법정에서 분쟁이 있을 때 중재를 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을 뜻하는 말이다. 열왕기상 3:16-28절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은 것이다.
시편 119편에서는 이러한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들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했다.
따라서 규례를 거스렸다는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판례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중재하시고 결정해 주신 기록들을 무시한 것이다. 대신 자신들의 탐욕에 따라 자신들 뜻대로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뜻이다.
이사야 1:21-31절에서는 이러한 반역을 신실한 성읍과 창녀로 비교한다. 신실한 성읍이란 성실하게 아기를 돌보는 젖먹이의 엄마이다. 그런데 이제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욕구를 해결해 주는 창녀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고아와 과부들의 송사를 해결해 주는 현명한 재판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돈이 많은 사람들과 짝하여 그들에게 돈을 받고 도둑이요 살인자인 자들 편을 들어 재판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돈을 받고 그들의 욕구를 받아주는 창녀와 같기에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규례에 반역하는 예루살렘을 창녀로 표현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규례를 받지않은 주변의 다른 민족보다 더 창녀 같다는 것이다.
또 그 둘러있는 이방나라들보다 더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율례란 미리 정해준 경계라는 뜻이다. 일꾼에게 하룻동안 해야 할 일의 양을 정해주는 것을 뜻한다.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도록 정해준 음식의 양을 가리키기도 한다. 제사장이 제물을 드릴 때 해야 할 일을 미리 정해준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날마다 하나님의 길을 온 맘 다해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지켜야 할 법들을 다발로 묶어 준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규례는 주로 지도자들이 공평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돌보는 데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율례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 주신 명령의 다발들을 늘 간직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그러한 규례도 거역하고 율례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예루살렘을 그 중심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이방스럽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명한 판례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방인들보다 더 하나님의 판례들을 거스렸던 것이다. 그날 그날 지켜야 할 작업 지침서를 한 다발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갖지 않았던 주변 열방들보다 더 열방스러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해야 하기도 하지만 간직하기만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도 에스겔 당시의 예루살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고아와 과부같이 도와줘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날마다 살아가는 삶의 지침으로 삼아 지켜 나가야 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우면서 그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즐거움만 느끼며 은혜 받았다고만 말한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이방스럽고 믿지 않는 세상의 모든 열방들보다 더 열방스러운 존재가 된다
참고: 이방스럽다 열방스럽다는 5:6절을 보고 제가 오늘 아침에 만들어 낸 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참고 문헌들은 이전에 올린 게시물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