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9-17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여러 곡식을 긁어 모아 빵을 만들되 소똥으로 빵을 구워 먹고 적은 양의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라 하시면서 예루살렘이 그렇게 망할 것을 경고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포위된 예루살렘 모형 앞에서 북쪽과 남쪽을 향해 누워 있다가 팔을 걷고 전투준비를 하며 심판을 예언하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누워있는 390일 동안 소 똥으로 불을 피워 빵을 구워 먹으라고 하신다.
9절은 여섯 가지 곡물들을 한 그릇에 담고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밀과 보리는 가장 중요한 곡식들이다. 유대인들은 밀을 선호했다. 상류층들은 밀로 빵을 만들어 먹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리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그렇지만 밀과 보리는 이 여섯 가지 중에 가장 선호하는 곡식들이다. 마지막 에 나오는 조와 귀리는 밀과 보리보다 훨씬 질이 낮은 곡식으로 취급되었다. 그 중간에 있는 두 종류의 콩이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다. 곡물로 취급되던 곡식 두 쌍 사이에 채소로 취급되던 콩 한 쌍이 끼워져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여러 종류의 곡물을 섞어서 빵을 만드는 경우는 없다. 이 또한 정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보여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를 섞어서 빵을 만드는 경우는 모든 곡식들이 바닥이 나서 조금 밖에 없는 경우이다. 곡식이 담긴 항아리 바닥을 박박 긁어서 빵을 만드는 모습이다. 이는 앞으로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굶주림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10절에서 하루 이십 세겔씩 달아서 시간을 정해 놓고 먹으라고 했다. 20세겔은 약 8온스 정도이나 8온스 컵으로 한 컵 정도이다. 11절에서 물은 하루에 육 분의 일 힌씩 정해 놓고 마시라고 했다. 이는 2/3 Quarter 정도에 해당한다(Block, 185; Cooper, 96). 곡식이나 물이나 성인 하루 분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만 공급받는다는 것을 흉내내는 것이다(Cooper, 97; Dyer, 1236). 물 역시 부족하여 최소한의 양 씩 관리들이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12절에서는 이렇게 바닥에서 박박 긁어 모은 것 같은 여러가지 곡식으로 보리빵처럼 구워서 먹으라고 했다. 그것도 인분으로 불을 피워서 구워 먹으라고 했다.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른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시면 거기서 그렇게 부정한 빵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보리로 만든 빵도 가난한 사람들만 먹던 것인데 이렇게 잡곡이 뒤섞인 빵은 오늘날이라면 건강식이라고 좋아하겠지만 당시에는 더욱더 비참한 음식이다. 게다가 인분으로 불을 피워 빵을 구워 먹는다는 것은 땔감 조차도 없어서 빵을 구울 수 없다는 뜻이다.
신명기 23:12-14절에서는 진 밖에 변소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가서 볼일을 본 뒤 흙으로 덮으라고 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백성들은 그 진영도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을 함부로 버리는 것 조차도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데 마른 인분을 모아 불을 피우고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에스겔은 14절에서 지금까지 자신을 더럽힌 적이 없다고 했다. 저절로 죽거나 물려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러한 고기들은 출애굽기 22:31절에 보면 평민들에게도 금지된 음식이다. 레위기 22:8절에서는 제사장의 음식으로도 금지된 음식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절대로 이런 부정한 고기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하물며 인분으로 구운 빵을 어떻게 먹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한 것이다.
그러자 15절에서 하나님은 그러면 인분 대신 쇠똥을 써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그렇다고 부정한 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분보다는 쇠똥이 조금 더 덜 부정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부정한 느낌이 좀 더 완화된 것 뿐이다. 그러나 쇠똥으로 빵을 구워 먹는 모습은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부정한 것이다. 에스겔은 390일동안 그렇게 먹고 살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낮 동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는 일반적인 식사를 했을 것이다.
16절에서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신다. 16절은 또 다시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신다. 이제 새로운 명령을 내리시거나 새로운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부르신 뒤에 원어에는 "보라!" 라는 말이 나온다. 새로운 구경거리는 이제 양식을 끊는다는 것인데 원어는 빵 지팡이를 부러뜨린다는 뜻이다. 레위기 26:26절에서도 역시 빵 지팡이를 부러뜨린다는 말이 나온다. 우상 숭배하면 저주하시겠다는 내용 중에 나온 말이다. 이제 그 약속을 실천하신다는 뜻이다.
또 그들이 걱정하면서 빵의 무게를 달아 먹는다고 했다. 또 그들은 공포감에 휩싸여 배급된 물을 마실 것이라 했다. 음식이 부족해서 빵을 저울에 달아 먹으며 이제 곧 이것 마저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또 물도 배급된 양만 벌벌 떨면서 마신다. 이제 곧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17절은 빵과 물이 부족하여 떤다고 했다. 16절에서 걱정하며 빵을 먹고 그보다 나아가 두려워하며 물을 마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훨씬 더 큰 공포감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죄악 속에서 죽는다고 했는데 죽는다는 말은 썩는다는 뜻이다. 죄악 속에서 썩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사방에 썩은 시체들이 널려 있고 구더기들이 시체를 파 먹는 그림이다. 그 중에서 일부 살아 남은 사람들도 죽어가는 장면을 그림처럼 그린 말이다.
이러한 일들은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일어날 일들이다. 머지않아 그 소식이 바빌로니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 포로들에게도 들려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최고로 열심히 믿는다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다른 것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는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아버지께 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고 다 멸망으로 이끄는 것들이다. 이제 그러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자. 그 길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