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4-8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포위된 예루살렘 모형 앞에서 북쪽과 남쪽을 향해 누워 있다가 팔을 걷고 전투준비를 하며 심판을 예언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된 모형을 만들게 하시고 그 포위된 성의 모형과 에스겔 사이에 철벽을 세우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징조로 삼으셨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그 모형 앞에서 누워있는 연극을 하게 하시고 그 포위망을 응시하면서 심판의 예언을 하게 하신다.
4절은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그 위에 지라고 하셨다. 옆으로 누워있는 날 수만큼 그들의 죄악을 떠맡으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에게 왼쪽이란 북쪽을 가리킨다. 동쪽을 바라보고 서서 방위를 따지기 때문이다(Cooper, 94; Fausset, 213).
동쪽을 바라보고 서면 앞쪽이 동쪽이고 뒤쪽은 서쪽이다. 왼쪽은 북쪽인데 이스라엘이 있고 오른쪽은 남쪽인데 유다가 있다. 먼저 이스라엘을 향해 누워 그들의 죄악을 그 햇수만큼 짊어지라고 했다.
5절을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390일을 누워있으라 했다. 390일동안 그들의 죄악을 떠맡으라는 것이다. 일년을 하루로 지정하셨다고 했으니 390일은 390년을 상징한다. 남북 왕국 분열에서 예루살렘 멸망까지 기간이 393년인데 대략 개산해서 390년으로 계산했을 수 있다(Allen, 166). Hamilton은 남북왕국 분열에서 에스겔이 예언할 때 까지라고 말한다(Hamilton, 565). 그러나 390일 동안 하루 24시간 내내 그렇게 누워있었던 것은 아니다(Dyer, 1235). 이어서 4:9-17절을 보면 다른 연극을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루 일정한 시간씩 그렇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6절에서는 이 기간을 채운 다음에 다시 오른쪽으로 누워서 유다 족속의 죄악을 사십 일 동안 떠맡으라 했다. 역시 일년을 하루로 지정하셨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40일 정탐한 후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떠돌던 40년을 뜻한다고 말한다(Barry, Ezek 4:6; Block, 179).
Rooker는 390년과 40년을 합하여 430년이기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기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Rooker, 1253).
7절은 이제 포위망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팔을 걷어 붙이고 그 성읍을 심판하는 예언을 하라고 했다. 팔을 걷어 붙이고 팔뚝의 맨살이 나오도록 한 것은 전사가 전투준비를 한다는 뜻이다(Block, 180). 이제 예루살렘을 공격한다는 신호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전투준비를 마친 전사의 모습을 흉내내면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예언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줄로 묶어서 에스겔이 갇혀 있는 기한이 다 찰 때까지 몸을 이쪽 저쪽으로 돌려 눕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셨다. 에스겔을 묶은 끈은 아무도 풀 수 없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풀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그렇게 포로로 잡혀 있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심판을 시작하시는 분이고 마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모든 심판의 권한은 하나님께 만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는 연극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셨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만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우리를 묶고 푸는 권한도 오직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적용할 수는 없다. 에스겔 시대의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었고 스스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잘못된 것인가? 절대 아니다. 말로만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AD100년경 거짓 선지자들이 많은 교회들을 어지럽혔기 때문에 이를 가려내기 위해 디다케(Didache)라는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 중 한가지 내용이 이런 가짜를 구별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내용은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다” 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좁은 문 앞에 서서 그리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꼬여 넓은 멸망의 문으로 밀어 넣는 자들이다.
말씀대로 따라 살려고 고민하며 애쓰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말씀대로 그렇게 다 지킬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믿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며 진리에 물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밤낮없이 기도한다고 성경책 끼고 교회를 드나들면서도 가정에서 싸우고 이웃과 싸우면서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도 역시 진리에 물타기 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진리를 돈 놓고 빌기만 하면 복주는 무속신앙과 다를 바 없는 신앙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도 역시 진리에 물타기 해서 가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믿지 않고 그렇게 물타기한 믿음이 진짜인 것으로 생각하며 편안히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팔을 걷고 그런 가짜들을 노려보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