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1-3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된 모형을 만들게 하시고 그 포위된 성의 모형과 에스겔 사이에 철벽을 세우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징조로 삼으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집에 가두게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묶어 놓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 혀를 묶어 말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멸망을 상징하는 인형극 놀이를 하라는 것이다. 포로로 잡혀온 유대 사람들은 그리운 고향 예루살렘이 그려진 벽돌을 흥미롭게 지켜 보았을 것이다.
1절은 또 다시 "너 사람의 아들아" 라고 부르며 시작한다. 새로운 명령을 내리신다는 신호이다. 그 명령은 흙 벽돌 한 장을 에스겔 앞에 놓고 그 위에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리라는 것이다. 개역은 이 흙벽돌을 박석이라고 했고 개역개정은 토판이라고 번역했다. Block은 아직 덜 마른 흙벽돌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Block, 171).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벽돌 한 장을 놓고 그 평면 위에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새긴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의 도시의 계획을 새긴 흙벽돌들이 발굴된 사례가 몇 가지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바빌론 지역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S.H.L., The Museum Journal).
2절은 예루살렘을 새긴 흙 벽돌 둘레에 포위망을 치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둘러싸라는 뜻이 아니고 성을 공격하기 위해 성 높이의 높은 토성을 예루살렘을 둘러 싸도록 세우라는 뜻이다. 당시 이러한 토성은 바위와 흙 등으로 쌓은 것이다. Block는 성을 공격하는 쪽에서 성 안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쌓는 것이라 했다(Block, 172).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 안의 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Cooper, 94; Matthews, Ezek 4:2 ). A.D. 70년 유대 로마 전쟁 때 로마 군대가 쌓은 벽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에 남아있다(Matthews, Ezek 4:2).
또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라고 했다. 사다리는 성을 공격하던 도구인데 그것을 높이 쌓은 토성 위로 끌어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고 쌓은 벽근처의 평지에 여기저기 설치해 놓았을 것이다. 진을 친다는 말은 군대가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토성의 바깥쪽에 군대를 배치했을 것이다. 또 성벽을 부수는 무기는 고대 전쟁에서 커다란 바위를 발사하던 도구일 것이다.
사람들은 에스겔이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전쟁놀이 하듯 예루살렘 성을 넓은 흙 벽돌 위 새기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에스겔이 그리는 길들과 건물들을 보며 고향인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 둘레에 토성을 쌓고 높은 사다리들을 세우고 성벽 부수는 무기도 배치하자 에스겔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두 다 깨닫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3절에서는 철판을 가져다가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세우라고 했다. 이 철판은 당시 사람들이 불을 피워 빵을 굽던 철판이다. 예루살렘 성이 포위된 모습을 나타낸 작은 모형 앞에 앉아 있는 에스겔은 소인국에 와 있는 걸리버와 같은 모습이다. 에스겔과 포위된 예루살렘 성 사이에 세워진 높은 철벽은 그 소인국 사람들 중에 아무도 거인인 에스겔에게 넘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도성을 포위하고 계속 지켜 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포위하고 지켜보고 앉아 있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보여주는 징조라는 것이다.
에스겔은 포위된 예루살렘을 지켜보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에스겔과 예루살렘 모형 사이에 놓은 철벽은 유다 백성들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Dyers, 1235; Fausset, 213; Hamilton, 564-65; Matthews, Ezek 4:3). 이사야 59:2절에서도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라고 한 것과도 같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벽을 넘어 하나님께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포위한 채로 지켜보고 있으라는 것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를 계속 지켜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 전에 잡혀 온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에 남아서 포위된 채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형제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사람들이다. 에스겔이 만들어 놓고 놀이 하는 이 모습을 지켜보던 포로로 잡혀온 유대의 지도자들은 에스겔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이해했을 것이다. 어떤 말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냐 물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역시 전율을 느끼며 두려워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러한 모형놀이를 하게 시키신 것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속아 헛된 희망을 품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완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으면 모두가 다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그 중에 대부분은 듣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그러나 그 중에 몇몇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렇게 에스겔에게 모형놀이를 통해 무언의 경고를 전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도 역시 에스겔 당시의 유대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넘지 못할 높은 벽이 있었다. 그 벽을 하나님께서 허물어 주셨다. 그러나 아무나 다 넘어오지는 못하게 하셨다. 그 철벽 한 곳에 구멍을 내고 길을 내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그리로 통과해서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철벽을 넘을 길은 아무데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통하여서 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