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12-15 하나님께서는 괴롭고 분통이 터지는 심정에 있던 에스겔을 그 권능의 손으로 누르시고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데려다 놓으셨다. 에스겔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레동안 그곳에 있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 주시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그들은 돌머리에 돌 가슴 같아서 받지 않겠지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전하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주님의 영에 의해 들림 받아 에스겔이 가서 전해야 할 대상에게로 옮겨지는 내용이다.
12절은 11절의 듣든지 말든지 전하라는 내용과 접속사로 연결이 된다. 따라서 환상을 보여주시고 말씀을 먹여 주시며 듣든지 말든지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영광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신 것이다. 아마도 에스겔이 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2절 뒷부분은 개역과 새번역의 번역이 서로 다르다. 영어 번역도 역시 둘로 나누어진다. 영어의 ESV, NASB는 "Blessed be the glory of the Lord from its place" 라고 번역했다. 에스겔 자신이 들어올려지고 에스겔의 뒤에서 대단한 지진의 소리가 들리면서 난 소리가 바로 "그 계신 곳으로부터 여호와의 영광에 복이 있을지어다" 라는 것이라는 뜻이다. 개역은 이러한 번역을 따랐다.
그러나 영어의 RSV는 "as the glory of the Lord rose from its place" 라고 번역했다. NIV도 RSV를 따라 번역했고 새번역도 "주님의 영광이 그 처소에서 나타나실 때에" 라고 해서 RSV를 따라 번역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나 칠십인역 구약성서(LXX)를 보면 ESV나 NASB의 번역이 옳다. 지진이 나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들리면서 들려온 소리가 "그 계신 곳으로부터 여호와의 영광에 복이 있을지어다" 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만약 RSV나 NIV나 새번역을 따른다면 에스겔은 그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본 것이 된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13절에서도 계속 에스겔 자신이 들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에스겔은 본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Brannan과 Loken도 히브리어와 LXX를 따르면 ESV나 NASB와 같은 번역이 옳다고 말한다(Brannan & Loken, Ezek, 3;12).
13절에서도 에스겔이 들은 소리들이 계속 이어진다. 1:24절에서는 날개치는 소리가 홍수가 났을 때 들리는 힘찬 물소리 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고 군대의 함성과도 같다고 했다. 그런데 3:13절에서는 크게 울리는 소리라고 했다. 1:24절에서는 떨어져서 보고 들은 것이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의 영이 직접 들어 올리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병거를 운반하는 네 생물들의 날개 짓과 병거의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지진 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는 뜻이다. 1:24절에서 홍수로 비유된 소리가 3:13절에서는 지진으로 바뀐 것이다.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그 진동을 느낀다는 뜻이다.
14-15절은 주님의 영이 에스겔을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전할 곳으로 옮기시는 장면이다. 어떤 이들은 14절까지는 환상이고 15절은 실제로 에스겔이 걸어서 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을 통해 보면 14절에서 주님의 영에 의해 운반되어 15절의 장소로 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4절에서 주님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 데리고 가셨다고 했다. 데려간다는 말은 열왕기하 2:3절에서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할 줄을 아나이까" 라는 말에서 취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Leslie Allen은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엘리야 수준의 권위있는 자격증을 부여 받은 인물이라고 말한다(Allen, 123).
그러나 그 때 에스겔은 괴롭고 분통이 터지는 마음으로 갔다(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고 했다. 괴롭다(근심하다)는 말은 원어에서 쓰다는 뜻이다. 이는 3:3절에서 말씀을 받아 먹을 때는 꿀같이 달게 받았다는 말과 반대되는 것이다. 말씀을 받을 때는 달게 받았는데 정작 그 말씀을 전하게 하려고 여호와의 영이 에스겔을 운반하고 있을 때는 쓰디 쓴 마음으로 갔다는 것이다. 분통이 터진다는 말은 원어에서 열 받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냥 싫어서 쓰디 쓴 마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 열 받아 터질 것 같은 분노의 마음으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전해야 할 내용 때문에 가슴이 쓰리다 못해 분통이 터졌던 것이다.
개역은 이어서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시키더라"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단순히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강하게 있었다" 라는 뜻이다. 개역은 여호와의 손이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는 말을 감동시켰다고 의역을 한 것이다. 새번역은 "주님의 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라고 했는데 개역보다 훨씬 원어를 담백하게 번역한 것이다. 에스겔은 그러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싫다 못해 가슴이 쓰리고 열을 받아 분통이 터졌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손으로 강하게 누르시며 그대로 따르도록 하셨다는 뜻이다. 받은 사명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는데도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자신을 압도했다는 것이다.(Cooper, 83; Fausset, 210).
15절을 볼 때도 개역의 번역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15절에서 에스겔이 간 곳은 델아빕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발 강가에 있는 어느 장소이다. 그곳에는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에스겔이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레동안 머물렀다. 개역에서 "민답히(새번역: 얼이 빠진 사람처럼)" 라고 번역한 말은 히브리어로 "사멤"인데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사무엘하 13:20절에서 "처량하게 지내니라"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다말이 강간을 당하고 압살롬의 집에 머물러 있던 마음을 나타낸 말이다.
말씀도 달게 받았고 그 말씀을 전할 장소에 와 있는데도 그 말씀을 전하기가 두렵고 에스겔 자신도 그 말씀의 내용들 때문에 가슴이 쓰리고 분통이 터지기 까지 했었다. 이제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 압도되어 그곳까지 왔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하고 이레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그 오묘한 뜻과 신비한 가르침에 놀라고 그것을 깨달으며 기뻐할 때는 그 맛이 꿀 송이 와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따라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때 그 부담감은 마치 에스겔이 느낀 것과도 같을 때가 많이 있다. 특별히 본인도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가르침에 놀라면서도 그 말씀에 담긴 엄청난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받은 말씀을 머리로만 받고 지적인 유희로 즐기며 은혜 받았다고만 하면 안된다. 에스겔처럼 쓰디 쓴 마음이고 분통이 터지는 마음이 들더라도 우리가 먼저 삶으로 실천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뒤에 이어지는 3:16-21절을 보면 전했는데도 그들이 안 들으면 그들 책임이지만 전하지 않아서 그들이 멸망하게 된다면 그 책임을 에스겔에게 묻겠다고 했다. 싫어도 주님의 명령이니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이다. 가서 전하자! 쓰린 가슴과 분통이 터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주님의 손에 이끌려 가서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