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30:1-7

Dawn Word

이사야 30:1-7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루터기에서 돋는 새싹과 떠오르는 빛 · 이사야 11장 · 60장

2018. 9. 20.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30장 강해 설교

이사야 30:1-7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만 당할 것이다.

하: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로 피하자. 그 길만이 살 길이다.

이사야 29장은 세상을 섬기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하나님은 레바논의 밀림 같은 높은 자들은 뒤엎어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고 지혜롭게 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하게 하신다 했다. 하지만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30:1-7절에서는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대상이 이집트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원어에서 1절은 "거역하는 자식들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방나라와 동맹을 맺어 나라를 지킬 계획을 추진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뜻이란 하나님의 영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계획을 꾸미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죄에 죄를 더할 뿐이라는 것이다.

2절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바로의 보호를 받아 피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그늘 아래에 숨으려 한다는 것이다. 피신이라는 말은 시편 31:2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견고한 바위"가 되어달라는 말에서 견고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또 숨는다는 말도 하나님의 그늘 아래 숨는다는 뜻이다. 시편 64:10절에는 "그에게로 피하리니" 라고 되어있다. 하나님을 성으로 삼아 피하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숨어야 하는데 바로의 성에 숨고 바로의 날개 아래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3절은 바로의 보호가 오히려 너희에게 수치가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오히려 너희에게 치욕이 된다고 했다. 보호란 2절에서 피신하려는 견고한 바위이고 그늘도 역시 2절에서 숨는 그늘이다. 이집트는 10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고 앗시리아는 60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가까운 이집트를 의지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는 이미 많이 약해져있고 이집트의 바로도 이집트 사람이 아니고 누비아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하는데 망해가는 바로에게 기대고 있어 오히려 수치와 치욕이 된다는 것이다. 수치라는 말은 남자의 생식기를 뜻하는 말이다. 이집트의 바로의 보호가 생식기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된다는 뜻이다. 치욕이라는 말은 그렇게 드러낸 채 모욕을 당한다는 뜻이다.

4절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이집트의 소안과 하네스로 도움을 청하러 간다는 것이다. 소안은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에 있는 오늘날 Tanis이다. 또 하네스는 소안의 동쪽에 있는 도시이다. 5절은 그렇지만 이집트에게서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치욕만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6절은 "네겝의 들짐승들에게 내리신 경고의 말씀이다" 라고 했는데 들짐승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들짐승들의 위험에 대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경고를 한다는 뜻이다. 이집트의 바로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낙타에 보물을 싣고 이집트를 갈때는 본래 해변에 있는 안전한 도로를 따라 간다.

그런데 어째서 빠른 길로 안가고 위험한 네게브의 사막을 통과하여 이집트로 가는가? 어떤 학자들은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그 길을 점령하고 막고 있었다고 설명한다(Oswalt,547).

그렇기 때문에 암사자 수사자 독사와 불뱀이 있는 위험한 네게브 사막을 지나서 이집트의 바로에게 간다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위험한 땅을 통과하여 이집트에 가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7절은 이집트가 너희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한 헛된 망상일 뿐이다. 이집트는 맥 못쓰는 라합일 뿐이라고 한다. 맥 못쓰는 라합이란 원어에서는 "가만히 앉아있는 라합" 이라는 뜻이다. 라합은 욥기 9:13절에도 나온다. 라합은 전설에 나오는 바다괴물의 이름이지 기생 라합이 아니다. 라합은 이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졸고있는 뚱뚱하고 늙은 할머니일 뿐이다(Oswalt, 548).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기 쉽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렇게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는 것은 하나님에게 반역을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도움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만 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산성이시고 피난처이시다.

이사야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