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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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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애가 3:49-66절

망적인 순간에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2019. 9. 3.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3:49-66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 때에 그 모든 책임을 예레미야에게 물으며 죽이려고 공격하던 자들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 고발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간구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고 생각으로 지은 죄에서부터 행동으로 지은 죄까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탈탈 털어놓고 기도하자며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위로해 주실 때 에야 눈물을 그쳤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49절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쉬지 않고 쏟아집니다" 라고 했다. 원어는 내 눈은 멈추지도 않고 흐르고 끝나지도 않는다" 라는 뜻이다. 쏟아지는 눈물은 댐의 수문을 닫아서 강물을 멈추게 하듯 막아서 쏟아지게 할 수도 없고 눈물이 다 떨어져서 완전히 말라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쏟아질 것인가? 5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고 자세히 보실 때까지 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고있는 자신을 보지도 않고 있다는 뜻이다.

51절에서 "도성에 사는 모든 여자" 라는 말은 "성읍의 모든 딸들" 이라는 뜻이다. 이는 실제 딸들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비유일 수도 있다. 실제 딸들을 뜻한다면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장면을 보며 슬퍼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성읍의 모든 딸들" 이란 말은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상징인지 실제 일어난 일을 묘사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백성의 딸" 이라는 말이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에서 유다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이긴 했다. (예 4:11; 6: 26; 8:11, 21, 23; 9:6; 14:27; 애 2:11; 3:48; 4:3, 6, 10). 그러나 이 경우에는 딸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단수로 썼기 때문에 같은 의미로 볼 수 없다.

"성읍의 딸들" 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은 예레미야 49:3절에서 "랍바의 딸들" 이라는 말이 있다. "랍바의 딸들" 이란 랍바 주변의 도시들이라는 비유로 쓰였다. 큰 도시인 랍바 주변에 딸려 있는 작은 도시들을 뜻하는 말로 쓴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성읍의 모든 딸들" 이란 예루살렘 주변의 작은 도시들을 뜻하는 비유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주변 유다의 모든 성읍들이 파괴된 것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51절은 예레미야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뜻하는 것이다. "내 마음은 슬픔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라는 말은 "내 눈이 내 영혼에 고통을 줍니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 눈으로 보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딸들이 적군들에게 강간당하고는 칼에 찔려 죽는 모습들을 수도 없이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52절은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52절은 "까닭없이 내 대적들이 새를 사냥하든 나를 사냥합니다" 라고 했다. 상당수의 성경 해석자들이 나라 전체를 예레미야 자신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까닭없이" 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나라 전체가 범죄를 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3:40절에서도 모두 함께 주머니를 탈탈 털어 여호와 앞에 내 놓고 살펴 보면서 주님께로 돌아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예레미야 개인이 받는 고난을 뜻하는 것이다.

3:40절에서 모두 함께 드러나지 않은 죄까지 다 드러내 놓고 진정한 회개를 하자고 촉구했는데 사람들은 도리어 회개하기 보다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재수없는 예언을 해서 우리가 이런 고난을 받는다' 라고 했을 것이다. 이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예언자를 핍박하는 모습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53절에서는 예레미야를 산 채로 잡아서 구덩이에 넣고 돌들로 입구를 막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다기 보다는 예레미야를 그렇게 비난하고 핍박했다는 뜻일 것이다. 54절은 그렇게 땅 속에 갇혀 있고 돌로 막혀 있어 나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홍수가 나서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역시 죽음의 공포가 자신을 홍수처럼 뒤덮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55절은 그런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그 깊은 구덩이에서 물이 목까지 차 오르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56절에서는 그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예레미야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살려 주십시오. 못들은 체 하지 마시고 건져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었더니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57절은 예레미야가 그렇게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셨다는 것이다. 58절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자신의 호소를 들어 주시고 자신의 대속해 주셨다는 것이다. 목숨을 건져 주셨다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석방시켜 주셨다는 뜻이다. 59절은 목숨을 건진 예레미야가 악인들을 하나님께 고발하는 내용이다. 예레미야에게 행한 악한 일들을 다 보셨으니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재판을 해 달라는 것이다.

60절은 악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그 모든 적개심과 그 모든 음모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으니 다 아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다 말씀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으니 그들의 악함을 다 아시니 올바른 재판을 내려 달라는 뜻이다. 61절은 주님께서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퍼붓는 모든 야유와 모든 음모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보셨을 뿐만 아니라 다 듣기까지 하셨으니 올바른 재판을 내려 달라는 뜻이다.

62절은 내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헐뜯고 모함한다고 했다. 헐뜯는다는 말은 입술들이란 뜻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레미야가 행한 악한 일을 입술만 열어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는 뜻이다. 모함한다는 말은 같은 음악을 반복하듯 계속해서 소리를 내어 모함한다는 뜻이다. 63절에서 그들은 앉으나 서나 늘 비난한다고 했다. 온종일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나 항상 그렇게 예레미야를 비난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64절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서 그들이 손으로 저지른 그대로 갚아 달라는 것이다. 65절은 그들의 마음을 돌같이 해 달라고 한다. 마음이 돌같이 되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악을 항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해 달라는 뜻이다. 66절은 그렇게 저주를 받은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진노로 추격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하늘 아래에서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도록 파멸시켜 달라는 것이다.

52-66절을 유다 전체가 이방민족들에게 당하는 고난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으로 본다면 앞부분에서 모두가 죄를 지었으니 함께 회개하자고 한 말과 모순이 된다. 이는 예레미야에서 계속 나온 것처럼 예레미야가 나쁜 예언을 할 때 죽이려고 했던 악한 자들이 예루살렘 멸망 뒤에도 계속 핍박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저들은 회개하자고 했는데 회개는 안하고 오히려 예레미야 네가 재수없는 예언을 해서 그렇다며 예레미야를 비난하고 죽이려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그 백성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며 슬피 우는 예레미야에게 더 큰 슬픔은 함께 아파하며 함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야 할 동족들이 오히려 예레미야를 비난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를 드신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선다면 그 백성들을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회개는 안하고 오히려 그 책임을 예레미야에게 돌리는 것은 그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파렴치함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때는 이제 회개해야 할 때라는 하나님의 신호이다. 그런데 그럴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악인들 중에 최고 악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악인들이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자. 주머니 탈탈 털어 다 내놓고 살펴보며 내 죄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진정한 회개를 하도록 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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