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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애가 › 3:40-48

Dawn Word

예레미야애가 3:40-48

하나님 앞에 완전히 다 쏟아놓고 기도하라

2019. 9. 2.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애가 3:40-48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고 생각으로 지은 죄에서부터 행동으로 지은 죄까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탈탈 털어놓고 기도하자. 이렇게 완전히 멸망시키시고 파괴하신 것은 모두 우리의 잘못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면서 가슴 아파 하시며 우리를 억울하게 괴롭히지 않는 분이니 하나님의 결정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라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러니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서 기도하자는 내용이 이어진다.

40절은 먼저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고 살펴보자고 했다. 지나온 길이란 의역을 한 것이고 원어는 단순히 "우리의 길" 이다. 우리의 길을 돌이켜 보자는 말은 본래 파헤쳐 보자는 뜻이다. 창세기 31:35절에서 라반이 드라빔을 찾기 위해 짐을 다 파헤치며 뒤질 때 쓰였다. 창세기 44:12절에서도 왕의 잔을 찾기 위해 형제들의 짐을 다 파헤치며 뒤질 때 쓰였다. 우리의 길도 그 속까지 다 파헤쳐보자는 것이다. 포장된 겉모습만이 아니라 우리의 길의 그 깊은 속까지 다 파헤쳐보자는 것이다. 또한 살펴보자는 말은 그렇게 다 파헤쳐 놓은 것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들여다 보면서 찾아 보자는 것이다. 혹시 하나라도 자신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죄라도 있는지 그렇게 찾아 보자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돌아가자는 말은 주님을 향하여 몸을 돌리자는 뜻이다.

41절은 그렇게 몸을 돌린 뒤 두 가지를 높이 들어 올리자고 했다. 새번역은 마음을 열고 손은 높이 들자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둘 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높이 들어 올리자는 뜻이다. 마음이란 말은 원어에서는 심장이다. 심장이란 생각과 지식이 담긴 곳이다. 따라서 자신의 속에 담긴 모든 생각과 지식을 다 꺼내서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자는 뜻이다. 또 손은 손으로 행한 모든 일들을 뜻한다.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도 하나님 앞에 다 꺼내 놓자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번거롭게 다 뒤지도록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깊은 곳에 숨겨진 생각들과 은밀히 행한 모든 일들을 탈탈 털어 하나님 앞에 늘어놓고 조사를 받자는 뜻이다. 원어에는 기도하자는 말은 없다. 손을 들었으니 기도하자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42절은 하나님 앞에 생각과 행동을 모두 탈탈 털어 놓는 모습이다. 먼저 주님을 거슬렀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주님을 공격하는 반역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또 죄를 지었다는 말은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뜻이다. 유다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며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 노릇을 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신 모든 명령들에 불순종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의 주인 노릇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고 반역이다. 우리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띄엄띄엄 듣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불순종한 것이다. 그런 죄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고 결국 심판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심판은 옳다는 뜻이다.

43절은 주님께서 몹시 노하셔서 라고 했는데 원어는 진노로 뒤집어 쓰셨다는 뜻이다. 인자하신 하나님의 모습 대신 무서운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 쓴 것처럼 진노로 완전히 가리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무서운 진노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맹수의 모습으로 겁만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추격하여 닥치는대로 죽이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이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닥치는대로 물고 찢어 죽이시는 모습이다.

44절은 주님께서 구름을 두르셔서 라고 했다. 구름으로 가리셨다는 말은 모양을 감추신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지 않으시려고 방음벽을 치신 모습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방음이 된 녹음실 같은 곳 안에 들어가 계시면서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대적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때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구름으로 방음벽을 치셨기에 이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45절은 그 결과 우리를 뭇 민족들 가운데서 쓰레기와 오물 더미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던 자신들이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코를 감싸고 눈을 찡그리며 지나가는 쓰레기와 오물 더미가 되게 하셨다는 뜻이다. 46절은 우리의 모든 대적들이 우리를 보고 입을 열어 놀려 댔다는 것이다.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로도 진짜 더럽다고 욕하며 지나갔다는 뜻이다.

47절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둘 씩 짝지어진 네 가지라고 했다. 이 네 가지는 발음이 비슷한 말로 짝을 지은 말놀이이다. 먼저 두려움과 함정은 원어에서 '파하드'와 '파하트' 이다. 파하드는 죽음의 공포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48:43절에서도 파하드와 파하트가 함께 나온다. 예레미야 48:40-47절은 독수리의 그림이 나온다. 독수리의 발톱에 잡혀 찢겨질 위기에 빠진 것을 두려움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함정이란 거기서 빠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죽음의 덫에 걸린 것이다.

두번째 쌍은 파멸과 폐허이다. 파멸과 폐허도 역시 '하쉐트' 와 '하샤바르' 이다. 하쉐트는 파괴되어 황폐화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Swanson, שֵׁאת). 하샤바르는 그릇 같은 것이 박살이 나서 조각조각 흩어진 모습이다. 완전히 찢겨 나가 너덜너덜해진 상처를 묘사할 때도 쓰는 말이다(Swanson, שֶׁבֶר). 이 말은 그릇이 깨진 모습 보다는 찢겨진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거리의 모습을 묘사한 말일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된 거리에 참혹한 시체들과 큰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48절은 원어에서 "눈물이 냇물처럼 흐릅니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눈물이 큰 수로나 운하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내 백성의 도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도성이란 딸이란 뜻이다. 예루살렘을 딸로 비유한 것이다. 47절에서 묘사한 것처럼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에 눈에서 눈물이 수로의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쏟아진다는 뜻이다.

우리 역시 공항 보안요원 앞에서 검색대에 우리의 소지품들과 여행 가방을 다 열고 탈탈 털어 다 늘어 놓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한 일들을 다 늘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놓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기에 숨겨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가 다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자비의 하나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때는 늦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조차도 듣지 않으시는 때가 오는 것이다. 완전히 파괴된 뒤에는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탈탈 털어놓고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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