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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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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애가 3:31-39

하나님의 정당한 결정에 순복하라

2019. 8. 31.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애가 3:31-3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면서 가슴아파 하시며 우리를 억울하게 괴롭히지 않는 분이니 하나님의 결정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라.

이전 말씀에서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니 뺨을 맞고 욕을 배가 터지도록 먹을 지라도 입을 땅에 쳐 박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그렇게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들이다.

31-33절은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세가지 이유가 나온다. 31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왜 그렇게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뺨을 맞고 욕을 배 터지도록 먹어도 참고 잠잠히 기다려야 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거부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고난으로 훈련시키시는 것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때가 되면 고난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32절은 그 두번째 이유이다. 원어에서는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슬프게 하셔도 그 크신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벌을 주면서 기뻐하겠는가? 부모도 아픈 마음으로 벌을 주고는 이내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하는 것이지 않는가? 하나님도 똑같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벌을 주셔서 우리를 슬프게 하실 때 하나님도 가슴 아파 하시며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33절은 그 세번째 이유이다. 원어에서는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세번째 이유는 사람의 아들들을 괴롭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것은 그 분의 본심이 아니라고 했다. 본심이란 원어에서 심장이란 뜻이다. 그 분의 진짜 의도는 괴롭게 하거나 술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시키시려는 것일 뿐이다. 이 세가지 이유들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가슴 아파 하시면서 잠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34-36절은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는 뜻이 아닌 것 세가지가 나온다. 첫째 34절은 그 땅에서 옥에 갇힌 사람을 발바닥으로 짓밟는 일이다. 새번역은 짓밟히는 일이라고 수동태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분명히 능동태이다. 갇힌 자들을 재판 하기도 전에 발바닥으로 짓밟는 일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 인간들이 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로 35절은 가장 높으신 주님 앞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가장 높으신 분 앞에서 한 강한 남자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그런 악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악한 인간들이 하는 것이지 역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악한 인간들이 재판 하기도 전에 발바닥으로 짓밟고 나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조차도 박탈하는 것이다.

셋째로 36절은 재판을 하는 중에 벌어지는 악한 일이다. 재판을 받게 한다 해도 소송 중에 그 사람을 속여 억울한 판결을 받게 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일이 아니고 악한 인간들이 한 일이다.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렇게 한 것이라는 뜻이다.

37-39절은 세가지 수사학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37-39절은 34-36절의 세가지와 짝을 이룬다. 34-37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세가지라면 37-39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34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일이라면 37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말씀으로 명령하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냐 는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니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 들이라는 뜻이다.

38절은 궂은 일도 좋은 일도 가장 높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역시 35절에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의 반대가 되는 말이다. 궂은 일이란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 일이고 좋은 일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무죄선고를 받는 일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결정에 순복하라는 것이다.

39절은 어찌하여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 죄값으로 치르는 벌을 불평하느냐는 것이다. 36절은 사람을 속여서 잘못된 재판을 받게 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공정한 재판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판결에 대해 불평하는냐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어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판결에 불복하느냐는 것이다. 역시 하나님의 판결에 그대로 순복하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모두 한 묶음에 세 개씩 들어 있는 세 묶음이 나온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벌을 주시며 가슴 아파 하신다는 것이다. 무자비하게 벌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악한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재판하셔서 내리신 벌이라면 하나님의 결정에 순복하여 달게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도 가슴 아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받는 고난이 사람들의 악함으로 억울하게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공정한 재판을 하셔서 우리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시는 것인지는 우리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분별하는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악인들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 호소하며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면 무조건 아멘으로 받으며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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