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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애가 › 4:1-10

Dawn Word

예레미야애가 4:1-10

악한 죄로 인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예루살렘 사람들

무너진 성벽 위로 떠오르는 아침 · 예레미야애가 3장

2019. 9. 4.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4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4:1-10 순금과도 같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예루살렘의 고귀한 사람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굶어 죽어갔다.

이전 말씀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 때에 그 모든 책임을 예레미야에게 물으며 죽이려고 공격하던 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예레미야는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 고발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간구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받던 고난을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에 비유하고 있다.

1절은 먼저 "어떻게 금이 빛을 잃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그 제단이 금으로 덮여 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 순수한 금은 빛을 잃을 수 없다. 순수한 금에 다른 것들을 섞었기 때문에 색이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어찌하여 순금이 변했느냐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순금과 같이 순수한 하나님의 집을 우상숭배로 섞어 놓았기에 변색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못쓰게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시켜서 그 성전의 돌들을 다 무너뜨려 흩어 버리신 것이다.

2절은 과거 순금과도 같았던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이제 싸구려 질그릇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시온의 아들들이란 예루살렘 주민들인데 특별히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게 순금처럼 존귀한 유대의 지도자들이 이제 싸구려 질그릇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파괴된 성전처럼 내던져지고 깨진 질그릇처럼 내 던져지는 존재가 된 것이다.

3절의 "내 백성의 도성" 은 원어에서 "내 백성의 딸" 이다. 이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루살렘은 들개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들개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려 빨리는데 예루살렘은 사막의 타조처럼 잔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타조 암컷들은 공동의 산란장소에 알을 낳으면 우두머리 암컷과 수컷이 밤과 낮에 서로 교대하면서 알을 품는다고 한다. 그런데 알이 많아 품을 수 없게 되면 암컷은 알을 골라내서 버린다고 한다. 알을 버리는 타조처럼 예루살렘도 그렇게 잔인하게 버렸다는 것이다.

4절은 그렇게 버려진 젖먹이들이 목이 말라서 혀가 입 천장에 붙었다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젖먹이에서 시작하여 유아기의 아이들 뿐만 굶어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5절에 보면 지난날 맛있는 음식을 즐기던 신분이 높은 부자 어른들도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색동 옷을 입고 자라던 그들의 자녀들도 이제는 거름 쓰레기 더미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는 길냥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처럼 귀한 집 아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지만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6절은 내 백성의 딸인 예루살렘이 지은 죄고 소돔성보다 크다는 것이다. 소돔성은 순식간에 멸망했는데 예루살렘은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돔성의 죄악은 성적인 범죄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음란하게 섬겼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성적인 범죄와 우상숭배가 한데 얽혀진 복합적인 죄를 범한 것이다.

7절의 "귀하신 몸들" 이란 히브리어로 나실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이란 뜻인데 이 말이 왕자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기에 많은 영어 성경들은 "Her princes" 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들이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희다고 했다. 눈보다 깨끗하다는 말은 아주 깨끗한 몸 상태를 나타낼 것이다. 우유보다 희다는 말은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를 나타낼 것이다. 이들의 얼굴의 모습일 것이다. 또 이들의 몸은 산호 보다 붉다 라고 했다. 이는 잘 먹어서 온 몸의 혈색이 아주 좋다는 뜻이다. 그 모습이 청옥 같다는 말은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마치 사파이어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최고로 고귀한 사람들의 외모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8절은 이렇게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하얗게 빛나던 고귀한 사람들의 외모가 이젠 숯보다 검어 졌다는 것이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는 것이다. 이제 거리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도 혈색이 좋던 살은 이제 뼈와 맞붙어서 막대기처럼 말랐기 때문이다. 이제 사파이어 같은 아름다움은 전혀 없다. 이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해골 같은 모습으로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9절은 칼로 죽임을 당한 자들과 굶주림으로 죽임 당한 자들을 비교한다. 6절에서 갑자기 멸망한 소돔보다 예루살렘의 죄가 더 크다고 했다.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굶어 죽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갑자기 칼에 맞아 죽으면 잠깐 고통을 당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없어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것보다 더 참혹한 고통은 없다.

10절은 자애로운 어머니들이 제 손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을 삶아 먹었다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하던 여인들의 손이 이제는 그 손으로 제 새끼들을 삶아 뜯어 먹는 손으로 변한 것이다.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모두가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제정신을 잃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멸망해가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참혹한 모습이었는지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이는 예루살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랑으로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그 참으시는 기간이 끝이 나면 이렇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경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들고 대적하는 것이 죄이다. 자기 뜻대로 자기 탐욕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감동을 주시고 명령을 하실 때는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1편의 기록자도 복 있는 사람이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간직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비결인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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