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3:1-9 하나님께서는 강한 남자를 죽도록 두들겨 패시고 어두운 감옥으로 끌고 가셔서 살과 뼈가 다 부서지도록 때리시고 그 고통으로 높이 담을 쌓으실 뿐만 아니라 지붕까지도 막으셔서 죽은 지 오래된 시체처럼 되게 하셨다. 게다가 살려 달라는 부르짖음 조차 새나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막으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눈물을 홍수 난 강물처럼 쏟아내며 회개하고 여인으로 비유된 시온에게 주님께 부르짖으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슬퍼하며 고난 중에 있는 남자가 고난 받는 남은 자들의 대표로 등장한다.
1절은 예레미야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 당하는 자라고 했다. 앞에서는 여인으로 비유된 시온에게 부르짖으라는 내용이 나왔는데 이제는 강한 남자인 자신이 고난 받는 내용이 이어진다. 고난 당하는 자란 원어에서 고난 당하는 강한 남자 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몽둥이로 얻어 맞고 있는 남자인 자신은 예루살렘에 살아 남은 용사들을 대표한다. 하나님께서 휘두르신 그 진노의 몽둥이는 실수로 우연히 한 대 맞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직접 드시고 죽도록 패신 것이다.
2절은 주님께서 강한 남자를 빛도 없는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셨다. 캄캄한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신 것이다. 3절은 그 어두운 곳에서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신다고 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 캄캄한 곳에서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또한 하나님은 이제 그 백성들에게 남과 같이 멀어진 느낌이 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감옥에 있는데 쉴 사이도 없이 주먹만 날아온다.
4-6절은 그렇게 맞아서 일어난 결과를 묘사한 것이다. 4절은 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셨다고 했다. 살갗이란 살과 가죽이다. 약하게 하셨다는 말은 다 낡고 닳아서 못쓰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도 맞고 또 맞아서 살과 가죽이 너덜너덜해진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뼈들까지도 다 꺾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가죽과 살만이 아니라 그 속의 뼈까지도 완전히 다 꺾어서 못쓰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5절은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신다고 했다. 개역은 담즙(쓸개즙)과 수고를 쌓는다고 했는데 가난이나 담즙은 아주 쓴 맛이 나는 독초라는 뜻이다. 고생이란 이집트에서 죽도록 매를 맞으며 강제노동을 하는 것을 떠올리는 말이다. 그러한 것들로 뼈까지 다 부러진 강한 남자의 둘레에 높이 둘러 쌓는다는 뜻이다. 마치 예루살렘 성벽 밖에 더 높은 토성을 쌓는 것처럼 그렇게 높이 쌓아서 꼼짝도 못하고 그 쓴 독초의 맛으로 계속 고통 당하며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이다. 달아날 수도 없도록 다 부러졌는데 달아날 수도 없이 완전히 막힌 것이다.
6절은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고 했다. 앞에서는 쓴 독초와 고생으로 둘레만 완전히 막혔었는데 이제는 뚜껑까지 덮여 버린 그림이다. 이제 무덤 안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이다. 그것도 죽은 지 오래되어 다 썩어 그 존재 자체도 희미해진 사람처럼 된 것이다. 1절은 밝은 곳에서 얻어 맞는 그림인데 2-3절은 어두운 곳에 끌려가서 맞는 그림이었다. 4절은 그렇게 맞아서 살이 걸레처럼 되고 뼈까지 다 부러진 그림인데 5절은 둘레가 모두 막힌 채 버려진 모습이었는데 이제 6절은 지붕까지 완전히 막힌 곳에서 오랫동안 버려진 모습이다.
7-9절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도록 가두는 그림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절대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7절은 먼저 높이 담을 쌓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거운 쇠사슬로 묶어 놓아 꼼짝도 못하게 하셨다. 8절은 꼼짝도 못하는 강한 남자가 하나님을 부르고 큰 소리로 울부짖어도 그 소리 조차도 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문들을 다 막아 버리셨다는 뜻이다. 이제 소리가 빠져 나갈 구멍 조차도 다 막혀 버린 셈이다. 9절은 다듬은 돌로 담을 쌓아서 내 앞길을 막으셨다고 했다.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길 조차도 잘 다듬어진 돌로 쌓아서 빈틈 하나도 없게 되었다. 큰 길 뿐 아니라 작은 샛길까지도 다 구부려 놓으셔서 갈 수가 없게 하셨다. 이젠 기도로 부르짖을 길 조차도 다 막혀버린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예루살렘과 유다의 용사들을 심하게 다루실까? 어째서 살려 달라는 부르짖음 조차도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살려 달라는 부르짖음이 들려오면 마음이 아프시고 견디기가 힘드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방 회복시켜 주면 또 다시 그렇게 멸망의 길을 갈 것이기에 이제 부르짖는 소리가 나오는 큰 길과 샛길까지 다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징계하시고도 마음이 아파서 소리까지 다 막으신 것이다. 이는 완전히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회개하고 새롭게 되길 바라시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유다 사람들은 이렇게 혹독한 징계를 받고 완전히 회개하고 새롭게 되었는가? 아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다시 또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한 죄악들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었다. 지독하게 낫지않는 무좀처럼 그렇게 겉모습만 조금 좋아진 듯 하다가 계속해서 또 다시 재발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제불능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는 다를까? 교회 역사를 보면 구약 전체에서 계속 반복된 죄악들이 교회 역사 전체에 계속 반복되며 강물처럼 흐른다. 인간은 그렇게 탐욕적이고 악한 존재이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분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분이 걸어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우리도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모습을 실천하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 걷지 않으면 우리도 아무런 소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