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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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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애가 3:10-18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좌절하는 예레미야

2019. 8. 28.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애가 3:10-18 그렇게도 욕을 먹고 조롱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도 완전히 망해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예레미야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 죽도록 아파하며 좌절을 느끼고 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강한 남자인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소리까지 막으시고 벌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맹수나 사냥꾼의 모습이다.

10절은 주님이 마치 엎드려서 강한 남자를 노리는 곰과 같고 또한 숨어서 강한 남자를 노리는 사자와 같다고 했다. 야생동물 중에 가장 크고 힘이 센 동물과 가장 빠르고 강한 동물의 그림으로 주님의 심판을 묘사한 것이다. 11절도 곰과 사자의 그림이 계속 이어진다. 길을 잘못 들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신다는 말은 곰이나 사자가 사냥감을 발로 잡고 이빨로 물어 찢으며 잡아 먹는 모습이다. 또 나를 외롭게 하신다는 말은 그렇게 다 뜯어먹은 뒤 버리고 가는 모습이다.

12-13절은 사냥꾼의 그림으로 바뀐다. 12절은 하나님께서 강한 남자를 향해 활을 당기시고 목표물로 삼아 조준하신다는 것이다. 13절을 보면 하나님은 명사수이시다.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으신 화살이 강한 남자의 심장을 꿰뚫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심장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콩팥이다. 심장은 생각과 지식이 머무는 곳이지만 콩팥은 속사람의 감정이 머무는 곳이고 속사람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이다. 정통으로 명중하여 그 깊은 속마음을 꿰뚫었다는 것이다.

14절은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 댄다고 했다. 예레미야 20:7-8절에서도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3:1절부터 등장하는 강한 남자는 예레미야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예언을 할 때마다 백성들이 그렇게 조롱하고 놀려 댄 것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15-16절은 강한 남자가 전쟁터의 1:1 결투에서 패한 모습이다. 15절은 승리한 장수인 하나님께서 강제로 강한 남자에게 쓸개즙을 마시게 하고 쓴 쑥을 먹게 하는 모습이다. 16절은 더 나아가서 돌로 이를 바수신다고 했는데 이는 머리채를 붙잡고 자갈이 가득한 땅바닥에 메어치는 모습이다. 이가 다 부서진 것이다. 또한 얼굴을 땅에 비비신다는 말은 재에 얼굴을 쳐 박게 하신다는 뜻이다. 예레미야가 당한 고통과 수치가 마치 전쟁에서 패한 장수와 같다는 것이다.

17절은 자신의 영혼이 평안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평안이란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서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그 백성들을 그렇게도 무섭게 심판하시니 하나님과 누리던 평안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행복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있다 보니 평안한 가운데 누리던 행복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18절은 찬란함과 희망이 사라졌다고 했다. 찬란함이라는 말을 개역은 힘이라고 번역했다. 원어에서 이 단어는 찬란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NIV, NLT, RSV) 힘이나 인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단어이다(ESV, NASB, NET). 문맥상으로 볼 때 소망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려면 인내나 견딜 수 있는 힘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소망이란 고난 중에서 참고 견디며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견딜 수 있는 힘도 여호와께 대한 소망도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도 욕을 먹고 조롱과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받아가면서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사실 힘들었던 때는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때는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실날같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처참하게 망해버린 것이다. 그 실날같은 소망도 끊겨져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레미야는 맹수에게 찢긴 것처럼 그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고 화살에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그 마음이 지독하게 아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여 이토록 비참하게 멸망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 아픔을 이렇게 애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소망이 있을 때는 아무리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본을 보이며 섬김으로 가르쳐도 듣지도 않고 따라 오지도 않을 때는 낙심하여 쓰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바울도 어미처럼 젖을 먹이고 아비처럼 본을 보이며 가르치고 파발꾼처럼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고 그 결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대적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바울의 가르침대로 굳게 서 있다고 할 때 "이제는 살았다!" 라며 기뻐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레미야와 바울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말 안 듣는 방탕한 자식과 같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죽을 것 같이 속을 썩어가면서도 끝까지 품고 가야 한다. 우리가 품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지 멸망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하나님 뜻에 맡기고 예레미야처럼 바울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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