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2:14-17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대적들의 조롱을 받게 된 것은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고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모두 성취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가 슬퍼하며 죽어가고 있고 예루살렘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될 수 없다고 했다. 이제 거짓된 예언은 드러나고 예레미야가 전했던 주님의 심판의 말씀은 다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4절의 예언자들은 원어에서는 "너희들의 예언자들" 이다. 너희들의 예언자들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이 환호하며 존경하고 따르던 예언자들이다. 그들이 너희들을 위해 본 것은 거짓이고 어리석은 환상들이라는 것이 이제 밝히 드러난 것이다. "네 죄를 분명히 밝혀 주지 않아서 너를 사로잡혀 가게 하였으며" 라는 말은 거짓 예언자들이 너희 죄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가는 것에서 되돌아오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에 거짓되고 예언을 하며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15절은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속이며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결과이다. 지나가던 나그네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조롱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딸을 보고 공격적인 태도로 소리치며 머리를 흔드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것이 바로 '더 없이 아름다운 성이요 온 누리의 기쁨이라' 하던 그 성인가?" 이다. 이렇게 비참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로 조롱하는 것보다 더 잔혹한 것은 없다. 차라리 침을 뱉고 때리는 것이 낫지 이렇게 아픈 말로 조롱하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눈물로 통독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는 최고의 아픔이다.
16절은 대적들이 입을 열어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을 마치 사나운 맹수가 입을 크게 열어 으르렁거리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를 삼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 날이 아닌가? 이제 드디어 그것을 보았구나" 라고 외친 것이다. 자신들이 예루살렘을 잡아 먹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17절은 이러한 비극에 대한 해석이다. 예루살렘의 비극은 대적들이 삼켰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뜻하신 것을 이루신 것이라는 것이다. 오래전에 선포하신 말씀을 다 이룬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사정없이 부수신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대적들이 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적들이 너를 이기고 즐거워하게 하신 것도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강한 대적들을 그렇게 높여 주신 것도 역시 주님이라는 것이다.
2:1-16절까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모습을 묘사한 뒤 예레미야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그대로 이룬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동안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서 기쁨을 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존경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레미야에게는 욕을 해대고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 그 모든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원하는 축복의 말만 전해주고 부정적인 말은 전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존경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런 교회들은 크게 부흥한다. 하지만 이런 거짓 예언을 좋아하며 모인 사람들은 완전히 멸망한 예루살렘 주민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귀를 틀어 막으며 욕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사람들은 교회 역사를 통해서 볼 때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며 온 마음 다해 순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씀만 박수 치며 골라 듣다가는 오늘 본문에 나온 예루살렘 주민처럼 된다.